[송철호의 反求諸己(58)]말이 주는 상처는 칼보다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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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反求諸己(58)]말이 주는 상처는 칼보다 깊다
  • 경상일보
  • 승인 2023.03.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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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홍생원은 두 딸과 함께 소의문 밖에서 살았다.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었던 홍생원은 항상 훈조막의 일꾼들에게서 밥을 빌어 와서 두 딸을 먹이었다. 어느 날 훈조막의 한 일꾼이 홍생원에게 “네가 우리의 상전이요? 무슨 까닭에 날마다 와서 밥을 내라 해요?”라고 핀잔을 주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집으로 돌아간 홍생원은 5~6일이 지나도록 사립문을 닫은 채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 한 일꾼이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가서 보니 홍생원과 어린 두 딸이 죽기 직전이었다. 그 일꾼은 가련한 마음으로 급히 나와서 죽을 쑤어 가지고 갔다. 홍생원은 열세 살짜리 큰딸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우리 세 사람이 간신히 주림을 참아서 이제 죽음이 가까웠다. 지금 죽 한 그릇을 받아먹고 내일부터 매일 치욕을 어찌 다 당하겠느냐?” 홍생원이 말하는 동안에 다섯 살 된 작은딸이 죽 냄새를 맡고 일어나려고 머리를 들었다. 큰딸이 동생을 눕히면서 “자자, 자자.” 하고 달래었다. 이튿날 역부들이 다시 가 보았을 때는 모두 죽어 있었다.

조선 후기에 장한종이 편찬한 한문 소화집(笑話集) <어수신화(禦睡新話)>에 ‘홍생아사(洪生餓死)’라는 제목으로 나온다. 가난으로 밥을 빌어먹던 홍생원이 일꾼의 말에 마음을 다치면서 두 딸과 함께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몹시 하기 싫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 이때 상대방이 나에게 건네는 말이나 태도에 나는 평소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말이 내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심하면 그와 내가 영원히 멀어지는 계기가 된다.

대화는 반드시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대화를 할 때는 상대를 고려해야 한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할 때가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처의 70%는 말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은 크게 다를 수 있다. <홍생아사>에서 역부가 무심코 던진 말에 세 사람은 굶어 죽는 길을 택하였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천 냥 빚은 못 갚을지언정 가능하면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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