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학폭 피해자의 의뢰를 받고 가해자 및 그 부모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던 변호사가 항소심에서 세 번이나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는 불성실 변론을 한 것이 보도되었다. 1심에서는 한 명의 가해자의 부모에 대해 승소를 하고, 나머지 가해자의 부모에 대해서는 패소를 했는데, 해당 변호사가 패소한 부분에 대해 항소를 했지만, 항소심에서 세 번을 출석하지 않는 바람에 항소가 취하된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1심의 패소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 그리고 1심에서 승소한 부분도, 패소한 한 명의 가해자 부모가 항소를 했고, 해당 변호사가 세 번을 출석하지 않는 과정에서 결론이 바뀌어서, 항소심판결에서는 오히려 패소가 되었고, 그대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 보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어떻게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그럴 수가 있느냐, 정말로 변호사가 그렇게 불성실해도 되느냐’라고 하는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적어도 변호사라고 하면 공부도 많이 하고, 어려운 자격증도 땄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양심껏 성실하게 사건을 처리해 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에 대한 배신감에 컸던 것이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는 즉각 해당 변호사에 대해 징계를 하겠다고 나섰다. 변호사법에 의해 대한변협에는 징계위원회와 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대한변협 회장은 조사위원회로 하여금 해당 변호사의 징계 혐의를 조사하도록 한 다음, 징계 혐의가 인정되면 징계위원회에 징계 개시를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변협의 징계위원회에는 법원행정처장 추천 판사 1명과 일반인 1명, 법무부장관 추천 검사 1명과 일반인 1명, 대한변협회장 추천 변호사 3명과 법학교수 1명 및 일반인 1명으로 구성돼 있어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가지려고 하고 있다.
필자와 같은 변호사는 분쟁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다툼 속에서 일방을 대변하는 일을 하거나 혹은 구속 여부·신분상의 불이익 여부를 오가는 의뢰인을 변호하는 일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의뢰인으로부터 항의를 받기 쉽다. 특히 한 번 실수하면 되돌릴 수가 없는 각종 기한을 지키는 일은 이를 놓치면 큰 배상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예컨대 1심판결에 대해 항소를 하려는 의뢰인에게 항소기간을 지켜주는 것, 소제기를 원하는 의뢰인에게 각종 소송 유형에 따른 소제기 기간을 지켜주는 것 등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의뢰인들은 법정 변론기일에 다른 변호사를 대신 보내는 것, 변호사가 법정에 지각을 하는 것도 매우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담당 변호사가 변론기일에 출석을 하지 않고, 그것도 세 번이나 출석을 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징계가 당연하다.
한편 의뢰인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 항의를 하기 때문에 사건의 실질적인 진행 내용에 대해서는 항의를 잘 하지 못한다. 변호사가 해당 사건에 대해 꼭 해야 하는 주장을 빠뜨린 것은 아닌지, 의뢰인이 가지고 있는 증거는 잘 취합돼 제출된 것인지, 성실하게 변론이나 변호를 수행한 것인지 등을 평가할 능력이 의뢰인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잘잘못을 따지는 상대방이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이다 보니 그것도 버거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변호사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최근 3개월 동안의 변호사 징계내역이 누구에게나 공개돼 있는데, 징계사유는 불출석이나 지연 등 소송절차와 관련된 문제, 수임료나 공탁금 등 돈과 관련된 문제, 의뢰인의 반대편과 접촉하는 등 변호사윤리와 관련된 문제 등이 많다. 변론이나 변호의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징계는 거의 없다.
사실 변호사가 수행한 모든 일처리 내용은 소송기록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변호사에 버금가는 식견만 있다면, 실질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변호사의 잘잘못을 찾아낼 수가 있다. 여태까지는 그것을 찾아내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바뀔 것 같다. 미국 오픈에이아이사가 공개한 쳇GPT-4는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 상위 10%의 성적을 보였다고 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자사의 검색엔진 ‘빙’에 GPT를 탑재하겠다고 했다. 이제 인공지능에게 소송기록을 전부 입력해 주면, 인공지능이 변호사의 일처리에 대해 그 잘잘못을 척척 알려줄 시대가 올 것 같다. 변호사가 더욱 긴장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