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다사다감(4)]이러다 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상태바
[정일근의 다사다감(4)]이러다 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 경상일보
  • 승인 2023.04.26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베이비붐 세대’가 중학교에 진학할 때 받던 최고의 선물은 ‘만년필’과 ‘시계’였다. 당시 중학교에 진학하면 목에 단추 대신 쇠로 만든 ‘훅’(hook)을 채워 이른바 ‘각’을 잡던 교복을 입었다. 검은색 교복에 교모까지 갖춘 그 시절, 교복 윗옷 왼쪽 주머니에는 만년필이 단정하게 꽂혀 있고, 왼손에는 시계가 멋지게 채워져 있다면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이었다. 만년필은 이제부터 자신의 반듯한 필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의미를, 시계는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며 살아라는 의미였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만년필은 자신의 필체를 만드는 데 주요한 필기구였다. 옛 선비는 문방사우 중 붓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그 시절 만년필이 붓을 대신해주었다. 옷이나 가방, 모자와 신발, 다양한 전자제품으로 자신의 시대를 대변하는 요즘 중·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까지 ‘악팔’이 많은 것은 만년필의 시대가 사라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거기다 교육 현장에서, 하물며 창작의 공간에서까지 200자 원고지가 사라졌다. 가로로 20칸, 세로로 10칸의 사각형에 펜을 잡고 글을 한 자 한 자 써서 채워 넣던 시절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전업으로 글을 쓴 지 오래인 필자에게 이제는 어디든 200자 원고지로 양을 정해 원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 200자 원고지를 대신해 A4 크기의 백지가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컴퓨터 한글 파일로 글을 찍으면 다양한 문서정보까지 제공되는 이 편한 시대에, 200자 원고지 타령은 스스로 ‘꼰대’라는 소리를 자처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펜을 꼭 잡고 글을 쓰던 ‘수공업 시대’서 ‘컴’이나 ‘휴대전화기’의 자판으로 글을 찍어대는 ‘광속의 시대’로 변해버렸다. ‘엄지족’은 옛날 말이었다. ‘휴대전화기 액정 속 세상을 즐기는 사람들’을 엄지족이라 불렀다. 하지만 휴대전화기의 기능이 문자에서 카톡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대화보다 메시지를 더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문자메시지나 톡의 내용을 보낼 때 왼손 오른손의 엄지에 이어 검지까지 재빠르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히말라야 산골짝이든 아프리카 밀림이든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세기 초 엄지족은 주로 청소년을 지칭했다. 지금은 60을 넘긴 베이비붐 세대까지 ‘흰 머리카락 휘날리며’ 엄지, 검지족 대열에 가담하고 있다. 대화보다 문자나 톡이 편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의 소중한 도구인 ‘글’에 이어 ‘말’이란 것도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어느 미래에는 언어 대신 문자만 남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연필이나 볼펜으로 글을 쓰던 시대가 사라질지 모르겠다. 모나미 볼펜은 1963년에 만들어져 베이비붐 세대와 함께 성장하며 우리의 대표 볼펜으로 자리 잡았다. 연필과 볼펜을 꽉 잡고 글을 썼던 ‘필기의 시대’는 앞으로 박물관에 가야 만나는 것은 또 아닌지. 볼펜을 잡고 글을 쓰다 보면 생기는 가운뎃손가락의 ‘펜 혹’은 영광이 아니라 감추고 싶은 상처나 흠이 되어버렸다.

엄지와 검지로 볼펜을 잡고 글을 쓸 때 가운뎃손가락으로 펜을 받치게 된다. 그러한 오랜 글쓰기는 가운뎃손가락에 굳은살인 펜 혹을 만들었다. 그땐 전국의 학생들 손에 펜 혹이 있었다. 그 펜 혹이 글쓰기에 고통을 줘서 날카로운 면도칼 같은 것으로 잘라내며 글을 썼던 기억이 필자에게 있다.

최근 시인들과 육필로 쓴 시를 전시하며,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원고지에 글을 썼던 시인들의 필체가 반듯반듯하면서 개성적이란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200자 원고지 사각 안에 글을 쓰다 보니 글체가 그 사각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둥글어지고 절제되면서 자신만의 글체를 만들어주었다.

요즘 청소년들과 대학생들마저 악필이 되는데 원고지가 사라진 영향이 클 것이라고 유추해본다. 적어도 필체가 형성될 때까지 초·중·고에서 200자 원고지를 부활시켰으면 한다. 그 덕은 대학에 가서, 나아가 사회에 나가서 톡톡히 보게 될 것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지 않았는가. 예부터 사람의 글씨도 신체와 말, 판단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소중하게 대접해왔다는 말이다.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기고]영남알프스 케이블카의 조속한 설치를 촉구하며
  • [발언대]위대한 울산, 신성장동력의 열쇠를 쥔 북구
  • [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복효근 ‘목련 후기(後記)’
  • 울산 남구 거리음악회 오는 29일부터 시작
  • 울산시-공단 도로개설 공방에 등 터지는 기업
  • 울산 북구 약수지구에 미니 신도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