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악마화와 박멸의 굴레는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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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악마화와 박멸의 굴레는 끝나야 한다
  • 경상일보
  • 승인 2023.04.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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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욱 법무법인 더정성 대표변호사

변호사의 업무를 수행하다보면 사람들의 다툼에 개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간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 동업관계 또는 사업관계로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친구 사이로 의지하고 지내다가 금전 문제로 다투어 소송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 심지어 부부 또는 부모 자식 간에도 이해관계를 조율하지 못해 법률분쟁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전혀 남일 경우보다 상호 간 신뢰관계에 있었을 때 더욱 감정적으로 치닫게 되고, 신뢰관계가 크다면 그 정도도 더욱 격렬하다. 처음에는 작은 분노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분노를 키워가다가 나중에는 상대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사안의 본질을 가릴 정도로 커져 서로에게 모두 손해가 되지만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상대에게 피해를 주려는 경우에 이른다. 이럴 때는 변호사가 객관적 제3자로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현명한 길을 찾도록 안내하고 설명하고 설득하지만 참 쉽지 않다.

이런 모습은 개인 간 다툼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과 집단, 파벌과 파벌, 나아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작은 이해관계의 차이에서 시작한 의견의 차이가 시간이 지나갈수록 부정적 감정이 더해지며 격하게 된다. 주변에 자신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두고 같은 편끼리 부정적 감정을 더욱 강화시키고 단결하며 상대방 또는 상대 집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키워간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상대를 악마화하며 나중에는 타협이 불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한다. 작은 이해관계의 차이에서 시작한 감정 대립이지만, 나중에는 대화와 타협이 아닌 반드시 응징하고 없애야 할 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조선 시대 당파 싸움을 하며 집권한 붕당은 다른 붕당을 ‘역적’으로 규정하여 삼족을 멸했다. 그러다 다른 붕당이 집권하면 권력을 휘둘렀던 그 붕당이 역으로 삼족이 멸함을 당했다. 서로 대화와 타협이 아닌 오로지 ‘말살’만이 존재했다. 지금 기준으로보면 그리 크지 않은 사소한 의견 차이와 이해관계의 대립이 시작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서로를 악마화하고 집단 간 벽을 두텁게 세우면서 상대는 그저 박멸의 대상이 되어갔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에도 북측에서는 상대방을 ‘반동’이라는 이름으로 악마화해 박멸하고, 남측에서는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악마화해 박멸해 갔다. 오죽하면 북한 사람들은 전부 뿔이 나고 얼굴이 빨갛다는 착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였다고 한다. 최근에도 이런 상대방에 대한 악마화와 박멸의 역사는 이어졌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에게 주홍글씨를 새겨 사회적으로 처단했고, 세월이 지나 정권이 바뀌자 역으로 적폐청산의 주역이었던 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고 사회에서 내몰림을 당했다. 미래에는 또 다시 박멸하는 자와 박멸되는 자가 바뀌고, 그 후 미래에는 다시 바뀔 것이다. 무서운 순환이라는 생각이다.

무시무시한 악마화와 박멸의 역사. 과연 옳은가? 그렇게 악마화와 박멸의 유혹을 우리는 이겨내지 못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상대를 악마라고 생각하는 자. 그래서 박멸하려는 자는 한 번쯤 되돌아 보아야 한다. 나의 생각 그리고 나의 주변과 파벌에서 자체적으로 강화된 상대방에 대한 악마화는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진실이라 하더라도 실재보다 많이 부풀려져 있을 수 있다. 상대방의 지난 공격에 의한 상처가 쌓이고 이해관계의 다름에 기인한 감정적 분노가 더해져있다면 더욱 그렇다. 내가 휘두르는 말과 행동의 칼이 억울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고, 본질을 떠난 오로지 원한을 위한 원한을 더욱 키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이고 쌓인 악의 고리는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상대방에 대한 악마화와 박멸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끌려가지 말고 이겨내야 한다. 상대가 정말 그렇게 나쁜가. 그리고 상대를 박멸함이 현명한 것인가. 상대를 악마화할 수 있고 박멸할 권한이 있는 자는 그 힘있는 칼을 쓰기 전에 더욱 이 생각을 철저히 검증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박멸하는 악순환의 방향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통점을 찾고 다름을 인정하며, 이를 바탕으로 타협점과 지향점을 찾아가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분열과 대립의 시대. 우리의 지도자는 그랬으면 좋겠다.

김상욱 법무법인 더정성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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