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내가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인공지능과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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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내가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인공지능과 익명
  • 경상일보
  • 승인 2023.04.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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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

올 것이 왔다. 얼마 전 세계 최대 사진 대회에서 AI가 생성한 이미지가 우승작으로 선정되는 일이 일어났다. ‘2023 SWPA(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의 한 분야에서 독일 출신 사진가 보리스 엘다크젠이 출품한 ‘전기공’이라는 작품이 1위에 선정된 것이다.

사진 속에는 두 여성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 흑백 이미지로 담겨있다. 작가는 해당 작품의 수상이 결정되자 AI로 만든 작품임을 밝히고 자신의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이 행위를 벌인 이유는 사진대회가 AI 이미지 출품에 대비됐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며, 이러한 상황에 대한 사진계의 적극적인 토론과 논의를 촉발시키고자 함이라고 했다. SWPA 측의 입장은 머쓱해졌겠지만 내심 이럴 줄 알았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AI가 그린 작품이 비싼 값에 거래된 사례도 있다. 그러나 빛과 실존하는 대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사진과 언어명령으로부터 시작되는 AI 생성 이미지는 본질과 근간부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에서는 그 차이가 눈에 띄게 줄고 있으며, 우리는 아직 창작자로도 관람자로도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 사진의 존재가치를 위해 AI 생성 이미지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영역으로 인정할 것인지, AI 사용에 대한 기준을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두려운 AI의 성장을 지켜보며 어질어질하던 차에 서울 서촌의 그라운드 시소에서 개최중인 The anonymous project(어노니머스 프로젝트) 사진전에 다녀왔다. 아티스트 리 슐만이 수집한 수십만 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엮어서 만든 새로운 방식의 아마추어 사진전이다. 사진 속에는 예술을 목적으로 하는 작품이 아닌 1950~60년대의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살던 익명의 삶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재미있게 꾸려놓은 전시도 좋았지만 그것보다 ‘삶 속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사진들과 리 슐만의 “어쩌면 사진은 인류가 개발한 기술 중 가장 다정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캡션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래, 이게 사진이지 싶은 순간이었다.

보리스의 사진과 리 슐만의 사진들은 모두 자신이 창작한 사진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속성은 완전히 반대이다. 오래전 사진이 탄생한 그 때, 사진을 두고 ‘회화를 위한 보조 광학 장치’로 치부했던 회화작가들의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다. 그 당시 사진의 탄생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했던 예술계에서 ‘사진은 절대 예술이 될 수 없다!’고도 했고 ‘회화는 죽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았고, 회화는 죽지 않았다. 결국 예술계의 이러한 논쟁들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지만, 아직은 사진과 순수 예술의 힘을 믿고 싶다. 리 슐만이 수집한 사진들을 촬영한 카메라 뒤에는 그 어떤 예술가들보다 큰마음을 담은 가족과 친구가 있었을 것이고, 우리 모두는 그 마음을 알고 있다.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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