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정책의 사유화는 횡령·배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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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정책의 사유화는 횡령·배임이다
  • 경상일보
  • 승인 2023.05.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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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충렬 전 울산부시장 행정학박사

그리스 군이 두고 간 목마를 의심하고 성 안에 들이기를 반대한 신하들이 트로이에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주술 같은 기만의 예언에 빠져 목마를 들인 그날의 트로이 지도자는 처참한 최후를 맞았고 나라는 망했다. 바버라 터크먼은 저서 <독선과 아집의 역사>(한역 조민 외, 원제 The March of Folly:from Troy to Vietnam)에서 정치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주의요소는 ‘독선’이며, 독선은 군주정치·과두정치·민주정치 등 정치구조나 민족과 계급에도 상관없이 등장한다고 했다.

정책은 ‘공익 목표 달성을 위한 정부의 미래지향적 행동방침’이다. 그러므로 정책은 정부기관의 주요 무형자산이다. 전시의 정책은 전략이다. 이 공적 무형자산이 비공익적이거나 사사롭게 사용되는 것이 정책 사유화이고 진영 논리가 작용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형법상 횡령·배임과 다름없다. 이 정책의 사유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터크먼은 대중적 차원의 집단 어리석음과 상호 증오감이 정치 엘리트층의 독선을 부추기며, 독선과 아집의 소산이 이념적 편향과 이분법적 가치 판단 등이라고 분석했다. 이념 편향적이거나 이분법적인 정책 접근은 곧 정책 사유화로 가는 길이요 이런 정책은 실패한다. 예컨대 과거 정부의 소위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오늘의 국가적 부담은 막대하다. 지난 4월8일 고리 2호기의 가동 중단에 따른 손해액이 3조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전의 계속운전은 다된 수명의 연장이 아니라 영업허가의 갱신(license renewal)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마치 연명치료를 포기하듯이 한 것은 남은 금보따리를 강에 버린 것과 같다. 또 전력산업의 영업 손실과 살얼음 같은 전력 생태계 붕괴 우려는 더 큰 비용을 예고한다. 이처럼 독선적 사유화에 의한 정책의 실패는 횡령·배임의 범죄다. 정책은 ‘공익을 위한 공적 행동방침’이므로 둥글고 복합적이며 최대 공약수적이고 그 본질이 실용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공적 행위인 정책 결정에 있어 감성적 접근도 금물이다. 정책에 감정이 개입되는 것은 사유화의 길이요 그런 정책도 실패한다. 2014년 4월의 대형 해난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정부의 안전 및 인사 조직이 이상하게 바뀐 적이 있다. 혁신이란 이름의 사고 대응책이었으나, 지역 뿌리가 없는 안전부서 신설과 조직·인사 기능의 분리는 정부조직의 퇴행적 변화에 불과했다. 이런 감성적 사유화에 의한 정책의 실패도 횡령·배임의 범죄다. 공·사를 막론하고 노발대발의 결단은 반드시 실패한다. “화가 났을 때는 여하한 결정이나 판단도 내리지 마라”는 징기스칸의 평생의 좌우명이다.

정책결정에 있어 행정 관청이나 공직자의 재량권 일탈·남용은 사법심사의 대상이고 이에 따라 오늘날 자유재량 행위의 개념도 설 곳이 없다. 정책의 사유화는 재량권의 일탈·남용이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 경제다. 여기서는 공법상의 통치행위 개념도 성립될 수 없다. 통치행위는 고도의 정치성을 띠어 사법적 통제가 곤란한, 예컨대 국가원수가 행하는 사면이나 조약 체결과 같은 것들이다. 통치행위 관념을 인정하더라도 국민 기본권과 관련되면 이 또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터크먼은 저서에서 30년 전쟁 전후에 스웨덴의 국정을 실질적으로 이끈 재상 악셀 옥센셰르나 백작의 유언을 인용하고 있다. “내 아들아 이 세상을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다스리는지 똑똑히 알아두어라.” 독선의 정책, 눈물의 정책이란 없다. 그것들은 사이비 정책이요 하찮은 자들의 편견에 젖은 파행적 소위일 뿐이다. 독선과 감정은 나라라는 이름의 컴퓨터에 ‘트로이 목마’와 같은 양의 탈을 쓴 악성 프로그램만 들일 뿐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에 대해 책임 있는 자들은 모두 책임을 져야한다.

전충렬 전 울산부시장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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