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중공업을 다니는 직원이라면 결혼을 위한 맞선을 볼 때 작업복을 입고 나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물론 필자의 아버지 세대 이야기다. 현대중공업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던 시절이다. 조선업이라는 직종이 고위험, 고강도이긴 해도 그 뒷바탕에는 높은 임금 수준과 고용 안정성이 있었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금융위기 등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현대중공업이었지만 2015년부터 조선소에 불어닥친 극심한 경제불황, 중국의 추격 등은 견뎌내기 힘들었다. 현대중공업은 유례없는 수주절벽 속에 인력의 효율화를 위한 인위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나마 현장에 남아있던 노동자들은 거의 10년간 상여금을 반납하고, 기본급을 동결하는 등 실질임금이 20% 이상 축소되었다. 게다가 이 시기 원청의 노동자 수는 급격히 줄기 시작하였고, 그에 비례해 하청의 노동자 수는 상당수 늘어나게 되었다. 정규직이 크게 줄고, 비정규직이 많이 늘어났던 것이다.
다행히 작년부터 조선업 불황의 짙은 안개는 조금씩 걷히고, 수주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조선업이 호황을 맞이했는데, 바로 ‘일할 사람이 없다’라는 문제였다. 불황 속에 조선소 인력은 뿔뿔이 흩어졌고, 숙련공들은 이미 조선소를 떠나 다른 제조업체에 정착했다. 이들은 저임금, 고위험군에 속하는 본인들의 친정인 현대중공업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특히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조선업을 철저히 외면했다. 지난 2022년 말 조선·해양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업은 ‘구직자가 기피하는 직종 1위’에 올랐다. 정부와 회사 측에서는 급한 나머지 동남아 이주노동자로 그 인력을 대체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 적응하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의 무단이탈을 비롯해 무엇보다 위험한 조선소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 간 원활치 못한 의사소통과 문화적 차이는 작업 현장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이전과 같은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심을 해야 한다. 뿔뿔이 흩어진 숙련공을 모셔오기 위한 노력과 청년 노동자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청년 노동자들에게 외면받는 회사는 미래가 없다. 이주노동자, 퇴직 노동자 계약 연장 등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얼마 전 400명을 뽑는 현대차 생산직 공채에 18만명이 몰렸다고 한다. 모든 수당 포함 시 연봉 1억원이 넘고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한다는 소문에 현대중공업 하청 직원 중 많은 인원이 이에 응시했다는 후문이다. 같은 현대 계열임에도 한쪽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넘치는 인력으로 고민에 빠진 셈이다.
이 두 회사의 차이가 바로 ‘임금’, ‘정규직’을 바라보는 시각차다.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의 처지에서는 ‘저임금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게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현대차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청년 노동자들이 새롭게 유입되고,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고용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결국 회사의 안정성과 소속감을 높이고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과감하고 현명한 투자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차가 처한 상황은 분명 다르다. 그런데도 확실한 건 청년들, 구직자들에게 외면받는 회사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성공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이 이번 현대차 생산직 공채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현대중공업의 ‘임금 인상’과 ‘정규직 채용 비중 확대’라는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기대한다.
필자의 아버지는 오래전 현대중공업을 퇴직하셨지만, 현대중공업 작업복을 옷장에 잘 보관 중이시다. 옛날 맞선을 보실 때 입으신 건지 아직 여쭤보진 않았지만, 현대중공업을 다녔다는 자부심은 지금까지 대단하시다. 현대중공업은 바로 이런 회사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지금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기보다 좀 더 긴 호흡으로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할 때다.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울산 동구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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