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대통령이 결국 해냈다. 연금개혁 얘기다. 어느 국민이 더오래 더많이 내고 더늦게 더적게 받으려고 하겠는가. 개혁에 저항이 따르는것은 당연하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1기때 연금개혁을 하려다 실패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동력을 잃었다.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은 집권하자마자 연금개혁의 칼을 뽑았고 1년여만에 해치웠다. 정년을 현행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것이 골자다. 연금을 받는 나이가 2년 늦어지는 것이다. 연금을 100% 다받기위해 보험료를 내는 기간도 1년 늘렸다. 야당과 근로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노조는 개혁안이 발표된 1월이후 석달넘게 연일 전국적으로 총파업을 하며 시위를 벌였다. 파리를 비롯한 곳곳에서 최루탄이 난무하고 불이 나고 쓰레기가 쌓이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정년을 늘릴 것이 아니라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걷으라고 요구하며 저항의 강도를 더했다.
그러나 마크롱은 물러나지 않았다. 정치상황도 유리하지 않았다. 여소야대의 하원으로 연금개혁 법안이 부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마크롱은 초강수를 뒀다. 의회를 아예 패싱했다. 의회표결없이 법률을 통과시킬 수있는 헌법상의 특별권한을 발동했다. 야당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법안은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와같은 헌법위원회로 넘어갔다. 헌법위에 연금개혁의 운명이 달렸다. 시위대는 헌법위원회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마크롱의 하야를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때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그러나 프랑스의 헌법재판소는 우리와 달랐다. 여론에 휘둘리지 않았다. 국민70%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랐지만 영향받지 않았다. 여소야대 정국이지만 정치적으로 흔들리지도 않았다. 프랑스헌법위원회는 법안의 핵심조항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야당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크롱의 뚝심이 이겼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체없이 법안에 서명했고 법안은 오는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프랑스내에서도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마크롱을 고집불통이라고 한다. 야당과 노조의 목소리를 안듣는다고 한다. 의회의 입법권을 무시했으니 바람직하지는 않다. 민주적 절차파기에 대한 반발과 비난도 받을 만하다. 그러나 마크롱의 소신은 뚜렷했다. 개혁에 대한 의지가 흔들림이 없었다. 본인은 퇴임이후 전직 대통령에게 지급하는 특별연금을 받지않겠다고 공언했다. 자신부터 전직 대통령의 특권을 내려놓고 일반연금에 편입하기로 했다. 헌법위의 당연직 종신위원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했다.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등 전임 대통령이 모두 시도하다 실패한 개혁이었다. 본인도 실패하면 곧바로 레임덕에 걸리는 정치적 부담이 있었다. 그렇지만 밀어붙였다. 이대로 두면 국가재정이 파탄날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이상 미래세대를 위해 미룰 수 없다고 역설했다. 올해 적자로 전환되고 4년뒤 16조원의 적자가 발행하면서 그 폭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현실적 시급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당장의 불편을 감내하지 않는다. 마크롱의 설득과 소통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개혁에는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마크롱은 자신에 대한 지지도와 국가이익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한다면 후자를 택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지지도는 10%p 하락했다고 한다. 헌법위원회의 합헌결정과 서명으로 법의 발효는 시작됐지만 야당과 노조의 반발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롱은 벌써부터 또 다른 개혁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그의 남은 임기4년. 결코 순탄치않아 보이지만 훗날 마크롱은 프랑스를 구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지 않을까.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의 슈레더 전 총리가 하르츠개혁으로 총선에 패했지만 독일을 구한 것으로 평가받듯이. 프랑스의 연금보험료를 비롯한 연금체계가 우리와는 다르고 고령인구의 비율도 다르지만 우리도 연금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먼 나라 프랑스의 일이 결코 먼 일이 아닐 것이다.
정연국 동국대 객원교수·전 청와대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