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81)]감출수록 신비롭다 : 알 카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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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81)]감출수록 신비롭다 : 알 카즈네
  • 경상일보
  • 승인 2023.05.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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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와디 무사는 페트라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바가지 입장료를 받으면서도 호객꾼들 극성이 시장판을 방불케 한다. 들어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라 걷기가 수월하다. 변화하는 풍경과 간간이 나타나는 유적을 구경하는 데는 걷는 속도가 더 유용하다. 입구에서 10여분 걸으면 협곡이 시작된다. 모래가 깔린 길바닥도 걷기에 편안하다. 기암 괴벽의 협곡 길(siq)이 끝없이 변화하는 공간감을 연출한다. 사막지대에 형성된 붉은 사암의 바위산, 와디럼에서 본 것처럼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경이로운 예술 조각품이 되었다. 그 길은 자연의 조각을 감상하는 갤러리가 된다. 암벽의 하부에는 인공적으로 축조된 수로가 협곡 길을 따라 이어진다.

협곡의 암벽에 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쌓거나 세워서 만든 건축이 아니라, 암벽 면을 파서 조각처럼 만든 건축이다. 건물을 세울 만큼 충분한 대지를 확보할 수 없는 장소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닮은 것도 있고, 그리스나 로마 건축의 요소가 나타나기도 한다. 암벽에 조성한 동혈식 건축은 이미 기원전 1300년경 만들어진 이집트의 아부심벨과 같은 신전 건축에서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협곡은 더 좁아지고 높아진다. 미로처럼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협곡 길은 호기심을 고조시킨다. 갈라진 틈 사이로 하늘이 담기고, 유적이 나타난다. 기암 괴벽의 틈 사이로 슬쩍 나타나는 거대한 고대 건축, 이토록 기가 막힌 전개 과정(sequence)이 있을까. 신비로운 동굴 안에 감추어둔 보물상자, 긴장과 흥분을 극대화시키는 극적 연출이다. 이 전개야말로 알 카즈네(Al Khazneh)를 페트라의 수많은 유적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만든 전개 과정이 아닌가.

그리스 로마 신전의 파사드를 갖는 거대한 건물. 아니 붉은 사암의 절벽을 파서 만든 건물 모양의 거대한 조각이다. 하지만 이미 건축과 조각의 경계를 초월한다. 그것은 거대한 건축물이 절벽 속에서 슬며시 나타나는 것 같은 신비의 환타지를 연출한다. 인디애나 존스에서 사라진 문명의 신비감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장소는 없었을 것이다.

▲ 알 카즈네 유적
▲ 알 카즈네 유적

알카즈네를 만든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BC 1세기 무렵 나바테아(Nabatea) 의 왕이었던 아레타스 3세(Aretas Ⅲ)의 무덤이라고도 하고, 신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카즈네라는 이름은 ‘보물창고’라는 뜻인데,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곳에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베두인들의 전설에서 비롯된다. 협곡 속에서 이를 처음 발견한 베두인들이라면 가히 보물창고로 생각했을 만하다.

건물을 양식적으로 살펴보면 그리스와 로마적인 요소가 모두 나타난다. 이른바 그레코-로만형이다.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은 코린트 양식의 그리스 신전을 많이 닮았고, 2층은 로마극장의 무대배경이나 도서관의 입면과 닮았다. 당시에 유행했던 명품 양식을 모두 차용해 만든 것 같다.

내부에는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 출입이 금지되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해 볼 수가 없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과 지하공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분묘가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건축물의 구성미나 조각의 섬세함이 축조된 건축물보다 더 정교하다. 절벽을 파서 건축물의 형상을 만들 정도의 경제력과 기술력이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알카즈네를 나오자 협곡이 넓어지며 도시의 중심부가 나타난다. 열주가 가로등처럼 배열된 콜로네이드 거리가 그 중심을 관통한다. 대로변을 따라 넓어지는 수로, 목욕탕, 로마식 극장과 신전 등, 대부분 1세기경에 만들어진 본격적인 도시의 유적이다. 중심부의 건물들은 부조식 건축이 아니라 축조식 건물이다. 나바테아 왕조의 수도로서 번성했던 도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훼손이 심하여 원형을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신비로운 도시의 모습을 유추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절벽에도 일단의 건물군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소위 왕릉군(Royal tombs)이라 부르는 유적이다. 궁전과 같은 건축 입면의 궁전 무덤(Palace tomb)도 있고, 알 카즈네와 비슷한 파사드의 코린트식 무덤(Corinthian tomb), 콜로네이드 전정을 갖는 우른 무덤(Urn tomb)도 있다. 이야말로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왕가의 계곡’보다 한술 더 뜬 것이 아닌가. 절벽을 파서 무덤을 조성하는 방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이집트의 셉수트 장제전(기원전 1500년경)이나 페르시아의 낙쉐로스탐(기원전 500년경) 등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시 중심부에서 주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페트라 시민들은 주로 교외 지역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페트라 도시중심에서 북쪽으로 8㎞에 있는 ‘작은 페트라(Little Petra)’에서 그들의 주거유적을 만날 수 있다. 주택 또한 암벽을 파고 만든 동혈식 건축이다. 분묘나 신전만큼 그리 거창하지 않으나 정교하다. 절벽의 자연 지형과 건축이 융합되어 가우디 작품을 보는 듯하다. 프레스코화로 장식한 내부 공간의 모습은 폼페이의 로마 주택이나 카파도키아 동굴교회를 연상시킨다.

십자군 전쟁 이후 페트라는 동화 속의 마법처럼 잠들고 모래 속에 묻혔다. 그리고 20세기 어느 날 깨어나 옛 모습을 재현했다. 척박하고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고대 이집트로부터 헬레니즘, 비잔틴을 아우르는 문명이 꽃피웠음을 드러냈다. 그들은 사막 속에 오아시스를 만들었고, 협곡이라는 협착한 장소 안에 찬란한 도시 문명을 건설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그리스, 로마문명의 파급력. 깊숙이 감추어졌기에 더욱 신비롭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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