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사회개혁은 나의 혁신으로부터
상태바
[경상시론]사회개혁은 나의 혁신으로부터
  • 경상일보
  • 승인 2023.05.19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권영해 울산문인협회장

계절의 여왕 5월의 하늘은 높고 신록은 그야말로 푸르르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등이 있는 가정의 달이지만 조금만 과거로 눈을 돌리면 혁명의 달이기도 하다.

달력을 보니, 지난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었다. 부패한 봉건제도에 항거해 궐기한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2019년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고 한다.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은 어떻게 보면 그해 5월에 신분제 의회인 삼부회의 소집이 하나의 시발점이 되어 구제도 즉,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의 모순에 종언을 고하고 시민의 권리가 신장함으로써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현대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프랑스는 1968년에도 기존의 가치와 권위를 거부하는 ‘5월 혁명’이 일어나 개인의 자아실현 기회를 보장하고 다양한 창조적 관점과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권위주의적 전통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혁명(革命)’에는 특이하게도 가죽이 등장한다. ‘피(皮)’는 금방 잡은 짐승에서 막 벗겨 낸 생가죽이고 ‘혁(革)’은 털을 뽑고 무두질하여 거의 새롭게 만든 가죽이다. 여기서 파생한 개혁, 혁신, 변혁 등의 단어에는 모두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스페인을 거쳐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여행할 때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중세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모로코 제2 도시 페즈(Fez)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전통적인 가죽 수공업 제혁공장인 테너리(tannery)가 내려다보이는 만물상점에 들러 낙타 가죽으로 만든 혁대(革帶) 하나를 구입했다. 그 오묘한 시장 근처에는 짐승의 껍질을 벗겨 불필요한 조직을 제거한 후 비둘기 배설물 등을 사용해 염색하는 생화학 처리 과정 중에 발생하는 악취 때문에 가이드가 제공한 박하 잎을 코에 대고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혁’은 산업혁명, 역성혁명, 종교개혁 등에 쓰이고 연금개혁이나 기술혁신, 정보혁명에도 등장한다. ‘개혁’은 과거를 맹목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과감히 개선하려는 조치이지만 때로는 이해(利害) 당사자들의 저항과 반발로 인해 추진에 난관이 수반되므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짐승의 피부를 벗겨내 수작업으로 가공해 유용한 가죽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이 지극히 힘든 극한작업이듯이 ‘변혁’과 ‘개혁’의 길 또한 큰 어려움을 감수하고 수행해야 하는 고난의 길이다.

다만 정치도, 문화도, 경제도 사회 전반적으로 지킬 것은 견지하고 변화시켜야 할 것은 과감히 고쳐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제도의 주체인 사람의 철학을 다잡지 않으면 미래사회에 능률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문학작품까지 생산하는 인공지능(AI)의 활약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3D 프린터 등으로 요약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은 극도로 발전하고 있으나 그것을 운용하고 누리는 사람의 의식은 어제에 매달려 퇴행적 이기주의, 꼰대문화, 내로남불식 폐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에게 닥친 위기의 시기에도 너나없이 습관적인 ‘손가락질’과 언행불일치로 인한 윤리의식 결여, 도덕 불감증이 만연함으로써 미래가 진보하기는커녕 답보나 퇴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떤 분야의 혁신보다 먼저 나를 돌아보고 우리 자신을 혁명하고, 쇄신(刷新)해야 할 시점에 왔다.

5월이 외형적 ‘혁명’을 넘어 진정한 ‘자아 혁신’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영해 울산문인협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대형 개발로 울산 해양관광 재도약 모색
  • [기자수첩]폭염 속 무너지는 질서…여름철 도시의 민낯
  • 신입공채 돌연 중단…투자 외 지출 줄이고…생산직 권고사직…허리띠 졸라매는 울산 석유화학업계
  • 아마존·SK, 7조규모 AI데이터센터 울산에
  • 울산, 75세이상 버스 무료 교통카드 발급 순항
  • 방어진항 쓰레기로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