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인문학적 소양으로서의 고등 서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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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인문학적 소양으로서의 고등 서예술
  • 경상일보
  • 승인 2023.05.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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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곤 삼봉서예연구소 소장

현재 교육부 문교정책은 취업 지상주의라고 할 정도다. 이로써 대학가의 문(文), 사(史), 철(哲)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영어교육 위주의 정책 하에 제2외국어안 소홀해지고 있다. 중국어의 상황은 그나마 조금 낫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폐지가 이어지고 있다. 국문과 마저도 예전과 같지 않다.

이 때문에 인문교육 수준이 날로 퇴보하고 서예술은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더욱이 한글전용 정책 하에 국민 대부분이 한자를 멀리해 서예를 전공한 필자는 미안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국의 문장가 한퇴지는 “사람이 고금을 통하지 못하면 말과 소가 옷 입고 있는 격”이라고 했고 소동파는 “몽당붓이 산을 이루어도 아무 소용이 없고 만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신명에게 통한다네”라고 했다. 이 말들은 서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경종이라 하겠다.

25년 전만 해도 대학에 서예과가 7~8군데 신설돼 인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현재는 2군데만 남은 상태다. 나머지 대학은 모두 없어졌다. 인문과 철학적 사유로 무장된 서예가를 배출하려면 서예술이 미술학과에서 인문학과로 옮겨져야 한다. 대학생활에서 실기를 연마하고, 철학과 고전문을 필수로 수강하도록 해 서예술의 진수를 얻게 해야만 한다. 아울러 백화문장(白話文章)도 배우고 여력이 있으면 역사와 함께 동양철학과 인문학을 탐미하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도 서예의 명가가 배출될 수 없을 것이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서예를 인문계열로 이전하고 장차 초·중등에서 서예교육을 실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몇가지 고등서예술과 관련된 제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는 졸업생 진로이다. 전공자에게는 반드시 교사자격증을 얻게 하고 초·중등 교육현장에 과목을 신설해 진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예인들이 합심해 정부에 건의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전통을 사수하며 새로운 문화와 융합해야 한다. 21세기는 동서양의 경계가 무너지고 탈권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서예 문화도 이를 외면하고 거부하면 소멸과 소외를 자초할 것이다. 서예술도 여기에 걸맞는 문화 장르를 뛰어 넘지 않으면 안된다. 경계 구분은 한낱 작가나 개인이 가지는 입장이나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어떤 서체와 누구의 서예가 더 가치있고 더 아름답다든지 하는 시비와 논란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서예가는 과거의 전통이나 서법으로부터 한결 자유롭고 주체적이고 개성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서예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전, 예, 해. 행, 초 등 5체와 왕희지, 안진경 등 대표적인 법첩 속에 서예가가 되는 모든 길이 간직돼 있는 것처럼 떠받들어 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초기 학습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하나의 참고서일 뿐이다. 예술의 창작은 이미 이루어진 기존의 것을 재현하고 반복하고 복사하는 일이 아니다. 이제는 전통을 지키면서 서예와 다른 문화와 융합을 통해 창신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서예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 아름다운 문자 세계를 이루어 낼 수도 있고, 현실 생활의 실용예술로 승화·발전 시켜낼 수도 있다. 예을 들면, 서예를 주제로 제작한 영화와 드라마, 서예소품, 광고성 캘리, 상품화 등 위대한 선현들의 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문화 공모전도 가능하다고 본다.

셋째는 세계적인 규모의 문화행사를 지자체가 주도해 이끌어 줘야 한다.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관심을 이끌어 내는 기획이 필요하다.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통해 대중적인 관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예술적인 감각과 개혁의지가 강하고 영향력 있는 조직위원장을 영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수년째 연계되어 내려오는 전시기획전이 있다. 바로 ‘세계서예비엔날레전’이다. 전주에서 2년 마다 동아시아전을 넘어 세계의 중심으로 비상하고 있다. 이 행사는 서예계 단일 행사로는 최대 규모의 권위있는 행사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런 전시는 지자체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 준다면 훌륭한 문화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예과의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날 문예가 땅에 떨어졌지만 서예가 다시 우뚝 설 날이 도래할 것이다.

김석곤 삼봉서예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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