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데믹 시대 이전, 해외 여행지에서 휴식을 즐기며 건축과 도시를 생각한 경험이 많았다. 2018년 말 포르투갈 리스본이 생각난다. 보름 동안 머물면서 1990년대의 엑스포 현장, 2000년 초중반의 쇠락 지구와 재생의 움직임, 오늘날의 도시건축을 천천히 만났다.
‘바다-미래를 위한 유산’을 주제로 열린 1998년 리스본 엑스포는 리스본의 ‘도시중심’을 아예 북동쪽의 엑스포 단지로 옮겨놓은 ‘사건’이 됐다. 이 중 백미인 포르투갈 파빌리온은 간결함과 단순함이 주는 모더니즘의 위용이 잘 드러난 ‘건축 전시물’이다. 세계적 거장인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리스본 파빌리온은 가운데 마당 위에 막이 얹힌 모습이다. 65×60m 크기에 완만한 곡선의 지붕은 20㎝ 두께의 얇은 보강 콘크리트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쪽의 보강 콘크리트 벽체에 케이블을 매어 단 형태다. 당시 기술, 아니 현재의 기술로도 구현이 쉽지 않은 얇은 지붕 아래 펼쳐진 외부공간은 엑스포 공원 단지의 중심이며 모두를 압도하는 공간의 서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성공적인 엑스포 개최와 신도시 계획은 성공적이었지만 동시에 기존 구도심의 쇠퇴도 불러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활동이 벌어졌다. 오래된 산업 유산들에 호스텔과 상점, 스튜디오, 디자인 회사, 레스토랑과 바 등이 모여 LX-factory 프로젝트를 펼쳤다. 메인빌딩에 자리한 코워크리스보아의 설립자 페르난도 멘데스는 LX-factory가 “업무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수용하는 공간”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이런 에너지 넘치는 문화가 밀집한 것은 장소가 가진 시간의 힘도 그 이유겠지만, 그곳을 채운 여러 직능과 세대가 함께 범벅이 되어 집합에 있다.
LX-factory 성공에 발맞춰 제로니모 수도원과 벨렘문화센터, 벨렘탑, 마차박물관 등이 있어 구도심에 비해 역사나 관광자원은 풍부하지만, 철로로 수변과 거주지가 단절된 곳까지 재생의 범위가 점차 확장됐다.
전기박물관 동측에 박물관 재단의 확장프로젝트로 기획된 MAAT-Museum of Art, Architecture and Technology는 이름 그대로 예술과 건축 기술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다. 수변공간의 활성화와 리스본을 대표하는 박물관이라는 두 목적에 부합하는 MAAT는 2016년에 완공됐고, 설계는 기술과 외피, 비정형 건축을 대표하는 영국의 여성 건축가 아만다 리베트가 맡았다. 높고 상징적인 건축이 아닌 땅과 닮은 지형을 닮은 언덕을 만들고 그 하부에 넓고 깊은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외피는 1만5000개의 타일이 비정형 외피에 맞게 휘어지고 비틀어져 부착됐다. 이 건축은 이 일대의 장소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기존 수변 공간을 입체적으로 연결하는 도시의 인프라로 작동한다. MAAT의 옥상에는 철길 넘어 이어진 보행교가 커브를 그리며 구도심과 맞닿아 있다. 구도심에서 넘어오는 출발점이자 구릉형의 옥상에서 떠나는 종착점이기도 하다. 단순히 브리지 역할을 넘어 기존 구도심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의지로 또 다른 재생 거점과의 연계를 모색했다.
1998년도의 엑스포로 시작된 신도시의 개발, 도시중심의 이동, 구도심의 쇠퇴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모색과 실천들은 리스본의 구도심을 매력적이고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도시로 변모시켰다. 단순히 땅이 남고 시설이 부족해 건물을 짓는 방식의 개발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 자원, 자연환경을 존중하며 만들어진 도시재생의 성과는 비록 첨단 기술의 성과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LX-factory의 성공에서 시작된 구도심의 문화중심 재생의 성과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리스본과 같이 바다를 낀 산업 도시로서 발전과 쇠퇴가 있었던 울산을 돌아보게 됐다. 도시를 변화시키는 것은 단순히 눈앞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개발사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련의 ‘과정’이 중요하다. 도시를 진행형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재생과 개발이라는 화두를 천천히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게 하지 않을까?
최정우 울산대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교수 울산건축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