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의 오월은 다채롭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중간고사가 끝나면 체육대회, 봄 소풍(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 등의 행사가 연이어진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도 지난 금요일 체육대회가 진행되었고, 학생들은 생기있는 표정과 승리욕에 불타는 눈빛으로 다양한 종목과 장기자랑에 참가했다. 교실에서 무표정으로 앉아 있던 학생과 같은 아이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빛났다.
교실에서는 조용하던 학생이 다른 장면에서 활발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꽤 즐겁고 신선하다. 축제때 단체댄스를 준비하며 몸치인 친구에게 안무를 가르치는 학생, 교내 행사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멋지게 하는 학생, 학급에 있는 식물을 누구보다 살뜰히 가꾸는 학생, 연극과 낭독 행사에서 개성 있는 목소리로 자신을 표현하는 학생 등 각자의 색깔로 빛난다. “아무리 학교 업무가 바빠도 학생들이 참가하는 교내 행사는 꼭 참석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아이들이 입체적으로 보이거든요”라고 이야기했던 동료 교사 K의 말에 공감한다.
‘빛나는 순간의 발견’은 ‘이름’을 알게 되는 것.//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게 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 나태주·풀꽃 2-
몇 년 전 만났던 학생 A는 조용하고 다소 무기력해서 수업시간에 눈에 띄지 않던 학생이었다. A의 글씨가 정말 예쁘다고 지난해 담임 교사가 전했던 말이 떠올라 시험 때마다 응시 현황 및 시험 시간표를 칠판에 기록하는 역할을 A에게 맡겼다. A는 시험 전날 종례 후, 혹은 시험 당일 친구들보다 일찍 등교해서 예쁜 글씨로 시험 시간표를 적어두었다. 이 때부터 예쁜 글씨하면 교과 선생님도, 학급 친구들도 모두 A의 이름을 떠올릴 만큼 학급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학급 공지사항이 있을 때면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A는 칠판에 나가서 또박또박 판서를 했다. 늘 조용하게 있던 A는 고2 시절 예쁜 글씨로 ‘반짝’ 빛났고, 그의 ‘이름’과 ‘색깔’을 이해한 친구들이 생겨났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순간이 있다. 빛의 종류와 세기가 다르듯 학생들의 매력도 다양하다. 어떤 학생은 강렬한 빛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 발산하기도 하지만, 어떤 학생은 청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반딧불이처럼 작고 여린 불빛을 특정한 상황에서만 보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초·중·고 12년을 학교에서 생활한다. 매일 다니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신이 빛나는 순간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야만 건강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진정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경험의 장을 마련할 때, 학생들의 ‘반짝’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혜경 울산 천상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