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가 있다. 배우 심은하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다. 처음 만난 남녀가 우연히 한집에 머물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구성은 액자식이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현실 속 남녀, 액자 속 남녀의 엇갈린 사연이 교차되지만 결국에는 현실의 두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들의 연애는 느리고 잔잔하다. 여성 감독의 의도적 연출이라고 한다. 사랑은 풍덩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물드는 것임을 알려준다.
새로운 것은 낯설고 불편하다.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대상을 탐색할 여유도 그때 생긴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워진다는 건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사실 문화예술도 그렇다. 흔히 ‘미술’로 통칭되는 시각예술은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그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호해졌다. 변화의 보폭이 얼마나 크고 빠른지 정신이 혼미할 정도다.
대표적인 하나가 ‘미디어아트’다. 울산시립미술관은 이 미디어아트 전문으로 한다. 그렇다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미디어아트만 고집하진 않는다. 시민들이 원하는 그림과 조각까지 함께 보여준다.
최근 마무리된 ‘이건희 컬렉션’이 그랬다. 유료 관객만 10만명이 넘었다. 95일 전시 기간 내내 하루 평균 1000여명이 다녀갔다. 울산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여파는 원도심까지 퍼졌다. 미술관 옆 동헌과 문화의 거리는 방문객이 약 4배 늘었다. 몇몇 가게는 매출이 100% 올랐다고 한다. 잘 만든 문화예술이 사람과 돈을 끌어들이는 특수로 진화하는 과정을 ‘미술관 옆’에서 직접 목격했다.
특수가 계속되면 좋겠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처럼 전혀 다른 두 개체가 서로를 탐색하다 종래는 조율과 포용의 결과물을 만들면 참 좋겠다. 그 선한 영향력이 물결처럼 번져나가 우리의 삶이 문화예술로 물든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러자면 달라져야 할 것이 있다. 지금처럼 오후 6시에 문 닫는 미술관으론 어림없다. 미술관 전면의 지관서가 역시 늦은 밤까지 불 밝히는 카페가 되어야 한다. 퇴근 후에도 여유롭게 관람하도록, 밤늦도록 낭만에 취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미술관 외벽에도 시선을 사로잡는 대형 미디어 작품 한 점쯤 걸 때가 됐다. 전국 최초 미디어아트 공공미술관이니, 격에 맞는 파격적 시도가 필요하다.
미술관 옆에서 또 하나의 가능성이 움트고 있다. 문화의 거리에는 문화예술공간이 61곳에 달한다. 공연시설 19곳, 공예 관련 16곳, 민간 갤러리 14곳, 문학 및 각종 창작체험공간 12곳이다. 그중 몇몇은 새로운 시도를 약속했다. 일명 ‘미술관 옆 오픈하우스’다. 공간을 개방하는 이 연대행사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열린다.
‘미술관 옆 아트페어’도 준비 중이다. 이 구역의 민간 갤러리들이 마음을 모았다. 이들의 원도심 사랑은 대단하다. 코로나와 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문화의 거리를 지켜왔다. 미술이 좋아 미술관 옆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어떤 방식의 아트페어를 보여줄지 자못 기대된다.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미술관 옆 카페축제, 미술관 옆 시네마콘서트, 미술관 옆 옥상캠프, 미술관 옆 야시장처럼 기발하고 재밌는 프로젝트가 무궁무진 이어져야 한다.
‘미술관 옆 OOO’ 프로젝트! 빈칸을 채우는 건 우리의 몫이다. 상상만으로도 이미 신난다.
홍영진 울산 중구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