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화첩]간절곶 ‘바다멍’으로 깨닫는 진정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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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화첩]간절곶 ‘바다멍’으로 깨닫는 진정한 자신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3.07.14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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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절곶일출(艮絶串日出 92x55㎝, 한지에 수묵담채. 2023).

◇간절곶

간절곶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동쪽 해안에 있는 곶이다. 간절곶은 먼바다에서 바라보면 긴 간짓대(대나무 장대)처럼 보여 유래된 지명이다. 곶은 바다 쪽으로 부리 모양 뾰족하게 뻗은 육지이다. 간절곶은 1911년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조선지지자료>에 간졀포, 1918년 <조선지형도>에는 간절갑(艮絶岬)으로 기록됐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간절곶등대는 1920년 3월26일 처음으로 점등됐다. 하얀 등대는 17m의 높이로 팔각형 10각 한옥식 지붕 구조로 전망대형 등탑이다. 등대 주변 잔디밭에는 인공 조형물들이 세워졌다.

간절곶이 유명하게 된 것은 2000년 1월1일 오전 7시31분26초를 기해 국립천문대와 새천년준비위원회가 새천년의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로 공포하면서부터다. 이후 간절곶은 해맞이 명소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 사실만으로 간절곶의 매력과 가치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오히려 간절곶의 진면목은 우리의 눈앞(目前)에 있고, 눈 속(眼目)에 있다. 그것은 출렁이고 소용돌이치다가 잔잔해지고, 어둡다가 빛을 담아 빛나기도 하면서, 늘 변하고 흐르는 바다에 있다.

◇간절곶 바다

우리가 간절곶에 간다고 할 때 그것은 바다를 보고 만나러 간다는 말이 되겠다. 간절곶 바다는 간절곶 풍경과 어우러진 바다이다. 간절곶 풍경은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야트막한 구릉과 잔디밭, 에둘러 돌아가는 암석해안,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 운치를 더하는 해송 숲, 방파제와 빨간 등대, 띄엄띄엄 놓인 돌과 의자, 풍차와 소망 우체통과 여러 조형물, 멀리 보이는 공장의 굴뚝, 느릿느릿 가는 선박 등을 연출한다. 이곳 해변을 따라 난 길을 걷고 탁 트인 바다를 보는 사람들의 눈과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친다. 생기는 난바다에서 넘실거리며 밀려온 물결이 해안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메밀꽃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든바다, 간절곶 바다에서 온다.

바다는 바라만 보아도 우리를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낮과 밤 매일 두 번씩 몰려오고 가는 밀물과 썰물은 바다의 시간과 리듬을 가진다. 우리는 시간 속에 멈추고 움직이며 흐르는 바다를 본다. 그것은 변하면서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시간의 흐름이다. 바다에는 밀고 당기는 물결과 더불어 높고 낮게 오르내리는 파도가 있다. 파도는 바다의 숨소리를 낸다. 그것은 격렬과 평온, 고난과 기쁨, 순간과 영원, 삶과 죽음 등을 불러 모아 함께 숨 쉰다. 파도는 쉼 없는 호흡을 가지고 생동감을 일으키는, 생명의 박자이며 우주의 리듬이다. 그래서 바다는 항상 새롭게 시작되며 끝없이 넓고 풍요롭다.

도시에서 인간은 말이 많고 생각은 적게 한다. 도시에는 말이 범람한다. 도시의 삶은 늘 뭔가를 말해야 하는 말의 장터다. 살기 어려울수록 말은 전쟁터가 된다. 인터넷 악성댓글은 말의 참혹함을 드러낸다. 도시와는 달리 바다를 보고 만나면, 인간은 말을 줄이고 생각은 바다처럼 깊고 넓게 해야 한다. 바다는 우리에게 인간의 눈과 귀는 두 개가 달렸는데, 왜 혀는 하나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권유한다. 그렇지만 간절곶에서 바다를 보는 최상의 방법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바다 멍때리기’다. 바다를 보고 멍때리는 순간 우리는 바다와 하나가 되어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의 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새롭고 풍족한, 바다의 시간과 만난다. ‘바다 멍때리기’는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바다와의 교감이다. 침묵하면서 많은 말을 하는 묵언 수행이다.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우리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행위이다.

알베르 카뮈는 <파사에서의 결혼>에서 “나는 오직 내 몸 전체로 살고 내 마음 전체로 증언하면 된다. 티파사를 살고 그것을 증언할 일이다”라고 했다. 이 구절은 아프리카 알제리 지중해 고대 도시 티파사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카뮈의 헌사다. 카뮈가 증언하듯이 티파사가 강렬한 태양과 은빛 철갑을 두른 바다와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로 신들이 내려와 사는 장소라면 산업 도시 울산의 간절곶은 완만한 언덕과 잔디밭과 해송, 등대 등과 함께하는 해가 바다에서 솟아나 소망의 빛을 뿌리는 곳이다. 간절곶은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신에 대한 걱정을 잊어버리고, 진정한 자신이 되는 순간을 만나는 장소다.

우리는 간절곶 바다를 보고 와서 생활의 활력과 마음의 균형을 잡는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희망을 기리는 노래’에 나오는 파도가 속삭이는 구절, “모든 일이 이루어질 거야”를 읊조린다.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물거품 같은 날이 희망을 노래하는 파도 소리를 낸다. 간절곶에서 우리가 바다를 보고 만나고 나면 조금은 현명해져 돌아온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글=문영 시인

※QR코드를 찍으면 은은한 수묵에 담은 간절곶 일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은정 인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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