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비바람 견디며 만들어진 ‘닭볏모양 쌍계봉’ 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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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비바람 견디며 만들어진 ‘닭볏모양 쌍계봉’ 진풍경
  • 김창식
  • 승인 2023.07.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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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산 상계봉의 고시 지명은 상학산인데, 바위가 학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쌍계봉은 바위가 수탉의 벼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

해마다 한 번은 금정산 환종주를 한다. 산행 코스는 ‘산성마을-파리봉(615m)-제1망루-쌍계봉(640m)-망미봉(605m)-남문-동제봉(540m)-제2망루-대륙봉(520m)-동문-제3망루-제4망루-의상봉(641m)-원효봉(687m)-북문-고당봉(801m)-미륵봉(712m)-장골봉(496m)-서문-산성마을’, 모두 19km이다. 출발지는 그때마다 다른데, 나는 대체로 산성마을에 주차해두고 파리봉으로 올라서 서문 쪽으로 하산하는 길을 선호한다. 이번에는 한 번에 환종주를 다 하지 않고 2회로 나누어서 했다. 한 번은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한 번은 홀로 산행이었다. 분량이 많아서 2회로 나누어서 연재할 생각이다.
 

2.

금정산은 산의 가운데가 분지처럼 움푹 들어가 있다. 분지를 중심으로 산봉우리들이 커다란 원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산봉우리를 잇따라서 1만8845m의 금정산성이 빙 둘러 있다. 금정산성은 해발 801m인 금정산 꼭대기에서 동남쪽, 서남쪽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축성됐다. 둘레가 1만8845m인데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제일 큰 산성이다. 1667년(현종 8)에 통제사 이지형이 금정산성의 보수를 건의한 것으로 보아, 이전에 이미 축성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증보문헌비고>에는 1701년(숙종 27)∼1703년에 쌓았다고 돼있다. 또한 1740년(영조 16)에 발간된 <동래부지> 1707년에 남북으로 두 구역을 구분하는 중성(中城)을 쌓고 내동헌 등의 관아와 장대, 군기고, 화약고, 승장소(僧將所) 등을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 그 뒤 1806년(순조 6)에는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중수하고 동문을 신축하였으며, 서문·남문·북문에 문루를 만들었다.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금정산성진지도>에 금정산성의 현황이 잘 그려져 있다.

금정산 하면 유명한 게 금정산성 막걸리이다. 대한민국 민속주 1호이다. 금정산성 막걸리의 기원은 금정산 위 산성마을 자락의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누룩을 빚으면서 시작됐다. 한때 범어사 승려도 누룩을 빚어 생계를 꾸렸다는 말이 있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술빚기에 적합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해발 400m의 청정 환경을 갖춘 금정산성 마을에서 제조된다. 알코올 도수 8도의 100% 국내산 살아 있는 쌀막걸리로 누룩의 질이 전국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방식의 막걸리는 누룩 특유의 쿰쿰한 향기가 있으며, 시큼털털한 맛이 난다. 이 때문에 현대 막걸리 가벼운 단맛에 익숙한 사람들은 전통 막걸리를 처음 마시면 그 텁텁함과 신맛에 당황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때는 고유의 맛을 지닌 이 막걸리가 더욱 알려져 금정산성에서 누룩을 많이 만들고 적게 만드는 차이에 따라 부산 동래를 비롯한 동부 경남 일원의 곡물 값이 올랐다 내렸다 할 정도였다고 한다. 금정산성은 전주와 원주 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막걸리 생산지였다.



3.

파리봉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바위 왕관을 쓴 것 같은데, 실제로 오르면 그 웅장함에 감탄하게 된다. 파리봉의 파리는 순우리말로 유리 또는 수정(水晶)을 뜻한다. 유리 조각을 일컫는 말인 사금파리에서의 파리가 이 파리를 뜻한다. 수정처럼 빛나는 산정에 코끼리가 낙동강 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다 해 불명(佛名)으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수정은 불교의 칠보(七寶) 중 하나이다. 파리봉에서 능선 따라 조금 걸으면 제1망루가 나온다. 금정산성 제1망루는 상계봉 가기 전 약 300m쯤 전, 해발 650m 지점에 있다. 망루는 대체로 방위별로 성벽의 모퉁이나 성벽 중간에 있는 산봉우리 가운데, 조망권이 넓고 좋은 암반이 솟아오른 지역에 형성됐다. 제1망루는 1995년 태풍 제니스 호로 인해 무너져 1996년에 해체됐으며, 성가퀴(성벽 위에 설치한 높이가 낮은 담)와 초석만 남아 있다.

상계봉의 고시 지명은 상학산인데, 금정산을 찾는 사람들은 상계봉으로 부른다. 상학산은 바위가 학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쌍계봉은 바위가 수탉의 볏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정산은 약 7000만 년 전 지하에서 마그마가 식어서 생성된 화강암이 융기해 형성된 산이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져 만들어진 멋진 화강암 지형을 감상할 수 있는데, 그 절정 중의 한 곳이 상계봉이다. 상계봉 가는 길에 바라보이는 낙동강과 김해평야의 풍경은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절경이다.

망미봉은 상계봉에서 남문으로 가는 길에 있다. 길 옆에 있는데도 산행객들이 흔히 잘 놓치는 곳이다. 망미봉이라는 이름은 산 아래의 망미동(望美洞)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다. 그런데 망미동은 망산의 ‘망’과 배미산의 ‘미’ 자를 합성해 붙인 지명이다. 배산은 척산(尺山) 또는 배산(盃山)이라고 불렸는데, 이 지역에서는 배미산(盃美山) 또는 잘미산이라고 한다. 수영동과 망미동 사이에 있는 산을 망산(望山)이라고 한다. 망미봉 표지석은 큰 바위 위 경사진 곳에 만들어져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4.

남문을 지나 계속 가면 동제봉이 나오고 제2망루를 지나서 성벽 따라 계속 걸으면 대륙봉이 나온다. 대륙봉은 바위가 넓어서 앉아서 쉬기가 좋다. 대륙봉에 앉아서 바라보는 맞은 편 파리봉의 모습은 그냥 그림 같다. 대륙봉은 금정산의 자봉으로 1970년대 초 부산 대륙산악회가 암벽타기 연습을 하던 암장(대륙바위) 위에 있다고 해서 대륙봉이라 하며, 정상의 넓은 바위를 평평바위라 부른다. 금정산의 여러 봉우리 중 유일하게 부산시 소유인 것이 대륙봉이다. 상계봉은 북구, 파리봉은 산림청 소유이고, 그 외 나머지 8봉우리는 모두 사유지이다. 하긴 황령산은 98%가 사유지이고, 장산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사망 후 삼성 측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내놓았다.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동문의 평상에서 금정산성 막걸리를 마셨다. 점심 먹기로 한 장소인 북문까지는 갈 길이 멀다.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제3망루와 제4망루를 지나면 의상봉이 나오고 연이어 원효봉이 나온다. 전국에 원효봉이나 의상봉의 이름을 가진 곳은 많지만, 금정산처럼 의상봉과 원효봉을 한꺼번에 가진 곳은 없다. 동문에서 원효봉에 이르는 길은 거대한 바위들이 만물상을 이루고 있다. 동문에서 출발해 원효봉과 북문을 지나 범어사로 하산하는 길은 야간 산행으로 몇 번 다녔던 길이다. 원효봉은 해골바가지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원효봉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원효암이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원효봉은 금정산 종주 코스의 중간 봉우리이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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