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마르지 않는 금빛 우물 간직한 산
상태바
[산중문답]마르지 않는 금빛 우물 간직한 산
  • 김창식
  • 승인 2023.08.29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금정산 금샘.

1.
금정산 원효봉을 지나면 북문이다. 북문은 산성마을이나 범어사로 하산하기 위한 출발 지역이다. 북문은 휴식하기 좋은 곳으로 어디서 올라오든 한 번은 쉬어서 가는 곳이다. 북문에서 고당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조금 있다. 고당봉은 금정산의 주봉으로 해발 801.5m이다. 1740년에 발간된 <동래부지>의 지도에는 고당봉을 ‘고암(姑岩)’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당봉의 한자 표기는 ‘할미 고(姑)’에 ‘집 당(堂)’을 쓴 고당봉(姑堂峰)과 금정산 팔경에 ‘고당귀운(高幢歸雲)’이 있는 점과 <범어사 창건 사적>에 의상이 금샘이 있는 곳을 찾아가 7일 7야로 독경을 해 불법(佛法)의 깃발을 높이 세운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고당봉(高幢峰)의 두 가지가 쓰였는데, 이중 고당봉(姑堂峰)이 공식 한자명이 됐다.

고당봉이라는 이름은 고모당(姑母堂)이라는 당산과 당산의 주인인 고당 할미와 관련이 있다. 고당 할미를 모신 고모당은 금정산 고당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고모당의 고모제는 범어사 스님들 주관으로 1년에 두 번씩 지내는데, 음력 1월15일과 5월5일에 올린다. 설화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을 함락시킨 왜군들은 울산 지방의 왜군과 합류하러 가는 길에 범어사를 불태웠다. 당시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해 있던 밀양 박씨는 범어사의 살림을 맡은 화주 보살이 돼 절을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마을과 절을 오가며 애를 써서 주민들에게 시주받은 것으로 스님들을 수발하고 절의 재건을 도왔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고당봉 아래에 사당을 짓고 고모제를 지내 주면, 자신은 그곳에서 죽어서라도 범어사를 지키는 데 힘을 쓰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주지 스님은 그녀의 뜻대로 장사를 지냈고, 그 후로 고모당을 지어 일 년에 두 번씩 고모제를 지냈다.

고당봉에 올랐다. 고당봉은 거대한 바위들로 만들어져 있다. 고당봉에 올랐으면 금샘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금샘은 고당봉 동남쪽 8부 능선에 돌출한 바위 무더기 중 남쪽에 솟아 있다. 금정산 금샘은 ‘범어삼기(梵魚三奇)’로 불리는 금정산 비경 가운데 하나로, 암상금정(岩上金井)이라고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3 동래현 산천조에 “금정산 산마루에 3장(丈)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위에 우물이 있고 둘레가 10여 자이며, 깊이는 7치쯤 되는데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황금빛을 띤다”라고 돼있다. 같은 책의 기록에 따르면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이 황금색 우물 속에서 놀았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금빛 우물이 있는 산’, 즉 금정산(金井山)이라 산 이름을 짓고, 그로 인해 산 아래 ‘범천(梵天)의 고기’ 즉 범어사(梵魚寺)라 절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2.
고당봉에서 하산하면서 미륵사를 찾았다. 통일신라 678년(문무왕 18)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한 해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다.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호리병 5개를 구해 왜구의 배 5만 병선을 물리쳤다고 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당시 왜적 첩자를 유인하기 위해 대사가 장군기를 꽂았다는 바위 구멍이 지금도 미륵사 독성각 옆에 그대로 남아 있다. 미륵사는 원효 스님이 창건하고 주석하면서 ‘미륵삼부경’ 중의 하나인 ‘상생경종요(上生經宗要)’를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미륵사의 석간수는 아시안 게임 등에 정화수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내 한가운데 위치한 염화전 뒤편의 거대한 바위는 마치 스님이 좌선하는 모양과 같다고 해 ‘좌선바위’로 불리고 있다. 미륵사 가장 높은 곳에 독성각이 있고 원효 스님이 손톱으로 그렸다는 마애불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이곳 모서리 뒤편 자연 암석에는 미륵바위의 장삼 자락을 양각한 흔적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 고당봉은 금정산의 주봉으로 해발 801.5m다.
▲ 고당봉은 금정산의 주봉으로 해발 801.5m다.

3.

미륵사에서 산성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던 일정을 변경해 범어사 쪽으로 하산했다가 계명봉과 갑오봉, 장군봉을 오르기로 했다. 북문에서 범어사 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대체로 돌계단들이 많아서 꼭 좋지만은 않다. 멀리 금강암이 보였다. 금강암은 금강 같은 견고한 상매를 성취해 고해를 벗어나 피안으로 향하는 나루가 되기를 염원하는 뜻에서 금강암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금강암을 지나 조금만 내려가면 보이는 암자가 대성암이다. 바위 사이로 물소리 가득한 곳이다. 대성암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비구니가 상주하는 곳이다.

범어사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으로는 1700년(숙종 26)에 간행된 목판본 <범어사창건사적>이 현존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 절은 당나라 문종 태화(太和) 19년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적기의 창건연대인 흥덕왕 때는 826년에서 835년까지이므로 이미 702년에 죽은 의상의 창건이라고 한 기록은 믿을 수 없다. 따라서 신라화엄십찰의 하나인 범어사의 창건은 의상이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670년(문무왕 10) 이후일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이 678년에 창건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의상이 창건하고 의상의 제자 표훈이 주석했던 범어사는 신라 화엄십찰의 하나로서, 또 왜구를 진압하는 비보사찰(裨補寺刹)의 하나로서 중요한 가람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10여 년을 폐허로 있다가 1602년(선조 35)에 관선사(觀禪師)가 중건했으나 곧 또다시 화재로 소실됐다. 1613년(광해군 5)에 묘전(妙全)·현감(玄鑑)·계환(戒環)·법인(法仁)·천원(天元)·덕균(德均) 등에 의해 중창됐다.

범어사는 최근에 일제의 흔적들을 치우느라고 바빴다. 뒷면에 조선총독부라고 새겨진 표지석을 제거하고 난간을 해체한 데 이어 일본이 최하층 기단부를 세운 3층 석탑의 원형을 복원했다. 일본식 양식의 보제루를 누각 형식으로 복원하고, 일본식 석축 쌓기와 축성법으로 만들어진 범어사 외벽 부분 등도 철거한 뒤 다시 만들었다. 또 경내 일본식 난간 84m와 대웅전 석축 화단에 일본 황실을 상징하기 위해 심은 금송(金松) 세 그루도 들어내고,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에 있는 일본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우리 소나무로 다시 심는 작업 등을 진행했다.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4.
범어사를 나서면 왼쪽으로 계명암으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계명암(鷄鳴庵)은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이 부근에서 절터를 물색하던 중 닭 울음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암자를 세우고 이름을 계명암이라고 했다. 규모는 작아도 한국 근대 선풍의 선구자인 경허대사가 범어사 계명암에 와서 ‘범어사 계명암 창설 선사기’를 썼다는 내용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선풍의 진작과 불법의 전파에 큰 역할을 한 유명한 암자임을 알 수 있다. 계명봉은 금정산의 동북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산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계명봉은 일본에서 바라보면 장군의 투구처럼 보이고 대마도에서 바라보면 닭의 형상이며 계명봉에서 대마도를 바라보면 지네의 형상이라 해 일본인들이 침략 당시 암탉 바위를 없애 버렸다고 한다.

갑오봉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했고 가팔랐다. 갑오봉을 오르니 억새풀로 가득한 장군평전이 보이고 그 너머로 장군봉이 보였다. 장군봉은 금정산의 여러 봉우리 중 고당봉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양산 쪽에서 장군봉으로 이르는 주 능선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흔히 공룡능선이라고도 하는 칼날 능선이다. 특히 낙동강 줄기와 김해평야, 그 너머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들, 금정산의 산행 코스 중 전망은 최고다. 칼날 능선이 끝나고 은동굴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장군봉은 따뜻한 날에는 서남쪽인 범어사 쪽에서 오르고, 겨울에는 북동쪽인 양산 다방리 쪽에서 오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