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울산화첩]선사인들의 삶과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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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울산화첩]선사인들의 삶과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바위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3.09.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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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주대곡리암각화(蔚州大谷里巖刻畵 75x48㎝, 한지에 수묵담채, 2023)

우리가 흔히 부르는 반구대 암각화란 명칭은 1995년 6월23일 국보 제285호로 지정되면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됐다. 이를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라고 표시하기도 하는데 줄여서 ‘대곡리 암각화’라 부른다. 오늘날 학계를 중심으로 반구대 암각화란 명칭은 대곡리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이 중 대곡리 암각화 발견은 1970년 12월24일 천전리 각석(천전리 암각화)에 이어 문명대 등에 의해 이듬해인 1971년 12월25일 최경환옹과 마을주민의 제보와 도움을 받아 이뤄졌다. 대곡리 암각화는 대곡천의 반구대 하류(1.1㎞) 절벽에 너비 약 8m, 높이 약 4m 규모의 중심 암면과 10곳의 주변 암면에 새겨진 300여점의 그림을 뜻한다. 절벽 윗부분이 집의 처마처럼 튀어나와 비바람으로부터 암각화를 보호하고 있다.



◇암각화, 파노라마식 구성

대곡리 암각화는 선사문화의 보고다. 이것은 암벽에 그려진 수백 가지의 그림 때문이다. 최근 이하우 교수의 조사 연구에 따르면 353점의 물상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그림은 고래사냥과 관련된 해양 어로 문화 시대와 호랑이, 사슴 등을 중심으로 수렵 사냥 채집 시대 등 연대기적 모습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준다.

선사시대 울산 태화강 중·상류지역을 따라 살던 선사인들은 초기 암각화 제작 때(신석기 후기)는 서툴지만 간결한 선 새김으로 나타냈다. 이 기법은 사슴 등 육지 동물에서 드러난다. 후기 암각화 제작 때(청동기 전기)는 고래를 비롯한 대형 바다 동물 등을 새겼다. 이것은 당시 선사인들이 해양 어로를 통해 수렵 채집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된 청동기 시대 도구도 있지만, 고래 등을 새긴 표현기법이 세밀하고 정교하며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초기 미술(구석기와 신석기)에서 세련되고 정교한 회화가 발견된 사례가 없다. 그러므로 대곡리 암각화 연대와 파노라마식 구성은 암벽의 서쪽 면에서 동쪽 면으로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암각화 앞에 섰을 때 오른쪽 면에 있는 육지 동물들이 신석기 시대 그림이고, 왼쪽 고래를 비롯한 해양 동물이 청동기 시대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곡리 암각화를 유형별로 나열하면, 첫 번째는 인물상 16점으로 주술사(무당), 사냥꾼, 뱃사람 등과 인면(얼굴)상 등이다. 두 번째는 200여점으로 가장 많은 동물상은 고래(57점), 사슴(55점), 호랑이(25점), 멧돼지(10점) 등이 있다. 세 번째로 도구상은 21점으로 배(5점), 그물(3점), 부구(5점), 작살, 울타리 등이 새겨졌다. 그 외 종류와 형태를 알 수 없고 형체를 밝힐 수 없는 110여점의 물상도 있다.



◇고래, 역동성과 비상, 기원의 문화

대곡리 암각화를 대표하는 유적은 고래이다. 고래는 그 수가 가장 많고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새겨졌다. 57점의 고래 중 몇 마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고래는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고래의 모습은 역동적이고 사실적이다. 즉 앞으로 유영하는 고래와 옆으로 유영하는 고래뿐만 아니라 새끼를 등에 업은 고래와 작살을 맞은 고래, 물을 품는 고래, 휘어져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고래 등 조형성이 뛰어나다. 특히 인상적인 고래는 아래로 직립해서 내려오는 자세를 취하면서 주둥이에서부터 굵은 줄무늬가 죽죽 그려진, 대곡리 암각화에서 가장 큰고래이다. 고래 종류도 다양해서 귀신고래, 흑고래, 북방귀신고래, 부리고래, 흑등고래, 범고래, 향고래, 돌고래 등 10여종으로 밝혀졌다.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태화강 중·상류 지역 생활권으로 수렵 채집을 생계 수단으로 삼던 사람들이 반구대 절벽 일대를 신성한 제의 공간으로 삼아 암각화를 제작했다고 했다. 제의 공간은 선사인의 사회와 문화, 종교와 신앙 등을 보여주는 집약적 장소이다. 암각화는 선사인들이 자신들의 생존 매개물인 동물들을 소중히 다루고 기억하고자 했던, 선사인의 혼이 담긴 삶의 기록이다, 역사다.

문명대 교수는 대곡리 암각화를 선사 미술의 보고, 신석기 시대 세계 최고의 암각화라 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최대의 고래 예술의 보고, 세계 최대·최고의 호랑이 암각화의 보고라고 극찬했다.

이런 찬사를 받는 대곡리 암각화도 현대에 와서 차츰 소멸의 늪으로 빠져들고, 그림 속 호랑이도 고래도 멸종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제 대곡리 암각화 보존 문제는 단순한 문화재 문제가 아닌, 우리 삶과 의식의 문제로 대두됐다. 우리의 생존을 물질과 자본에만 ‘몰빵’하게 하는 문명과 문화는 과거를 폐기하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억압한다. 지금 대곡리 암각화는 공동체 의식과 삶을 신성시하는 선사인의 문화를 기억하고, 고래처럼 역동적이고 비상하는 울산, 울산 문화를 위해 자신을 살려주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글=문영 시인

QR코드를 찍으며 암각화 속 고래가 역동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은정 인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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