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추풍낙엽과 흐르는 계곡물로 만추의 쓸쓸함 만끽
상태바
[산중문답]추풍낙엽과 흐르는 계곡물로 만추의 쓸쓸함 만끽
  • 김창식
  • 승인 2023.12.01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양산 토곡산은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비탈의 경사가 심해 천태산·천성산과 더불어 부산 근교의 3대 악산으로 꼽힌다.

1.

토곡산(855m)은 경남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산이다.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비탈의 경사가 심해 천태산·천성산과 더불어 부산 근교의 3대 악산으로 꼽힌다. 토곡산이라는 이름은 흙 토(土) 골짜기 곡(谷) 자인데, ‘오르면서 토하고 곡한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가파른 산길과 암릉의 연속이다. 오봉산과 함께 신불산~영축산~염수봉으로 이어지는 영축산맥의 끝자락을 이루는 산이다. 정상부는 대부분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어 무척산에서 금동산과 석룡산을 거쳐 신어산에 이르는 낙동정맥의 이름난 산들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전망이 좋다.

토곡산은 산의 크기만큼 품고 있는 계곡도 마을도 많다. 그리고 계곡과 계곡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도 많다. 다만 현대로 오면서 사람들이 잘 걷지를 않아서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에는 토곡산 정상을 오르는 대신 토곡산의 옛길을 따라서 걸으면서 오지마을을 탐방하기로 했다. 출발지는 사지목 삼거리다. 사지목 삼거리는 원동자연휴양림에서 조금 더 가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수암사를 거쳐서 늘밭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명전마을이 나온다. 오늘의 코스는 ‘사지목삼거리-명전마을-널밭고개-여시골-늘밭마을-수암사와 불암폭포-사지목삼거리’이다. 명전마을에서 늘밭마을까지 가는 길은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임도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다.
 

▲ 수암사 약사전 인근에 위치한 토곡산의 비경 불암(佛巖)폭포
▲ 수암사 약사전 인근에 위치한 토곡산의 비경 불암(佛巖)폭포

2.

명전마을로 가는 길은 계곡 따라 물소리가 이어진다. 계곡이 길고 물이 많은 편인데, 계곡 따라 이어진 마을이 선장(仙庄)이다. 선장은 신선이 하강할 만큼 골짜기가 깊고 물이 맑은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신선이 놀았다는 것도 지명과 관련해 덧붙여진 이야기이다. 선장마을은 처음 바깥 골인 선장골, 안선장골, 소태나무골, 웃각단, 사지목, 물바지, 맹주검, 널밭고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지이다 보니 6.25 전쟁 때 공비들의 약탈로 시달림을 많이 받은 곳이다.

명전마을로 가는 길은 온통 가을이었다. 단풍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떨어진 낙엽과 흐르는 물소리가 만추의 쓸쓸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이윽고 도착한 명전마을, 해발 600m에 위치해서인지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마을은 산간마을답게 비탈진 곳에 돌담들이 많았다. 작은 교회를 만났다. 친절하게 문 열어준 할머니, 얼마 전에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예배를 봤단다. 열 명 남짓 들어갈까. 먼지가 끼었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마을에는 드문드문 감나무들이 있었는데, 감은 따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그대로였다.

명전마을 마을을 지나서 산길을 따라 걸었다. 풍력발전기가 점점 가까이 보였다. 소음이 들리는 듯했다. 저주파 음의 피해가 보고된 사례들이 있는 것으로 보면 세상일에는 항상 명암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은 시나브로 높은 곳을 향해 있어서 걸음을 뗄 때마다 더 먼 곳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산이고 비슷비슷했지만, 가만히 보면 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그 작은 차이를 이해하면서 걸으니 지루함보다는 신선함이 더 컸다. 가끔 삶은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사지목 삼거리에서 4km쯤 왔을까. 이윽고 도착한 널밭고개,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김해에 살던 노파가 아기를 업고 왜군을 피해 정착한 곳이라고 전한다. 널[늘]을 주식으로 해 목숨을 연명했다 해 널밭이라고 했다고 한다. 널은 억새풀과 비슷하거나 가늘고 긴 풀로, 삿갓이나 돗자리를 만들 때 쓰던 풀이다. 일행 중 한 분이 내게 출판을 축하한다면서 막걸리와 커피를 건넸다. 쑥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산길이든 옛길이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주전부리를 잘 챙겨온다. 자기가 먹기 위한 것보다는 나누어 먹기 위함이다. 인문학이 별것인가. 작지만 남을 챙기는 마음이면 그것이 인문학이다.

널밭고개를 지나서 조금 가면 야시골이 나온다. 여시골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여우를 뜻하는 방언으로써 같은 말이다. 대체로 여우가 밤이면 나타나 밤늦은 길손들이나 시장에서 늦게 오는 주민들을 괴롭혔다고 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간혹, 여우들이 무덤을 파헤치려고 몰려들어 ‘야시골’이라 불렀다고도 하고 몽유병을 앓고 있는 한 여자가 밤만 되면 무덤 사이를 여우처럼 헤매고 다녔기 때문에 ‘야시골’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유독 여우와 관련된 전설이 많고 여우에 빗댄 말들도 많다. 그런데 그 많던 여우들은 다 얻로 갔는지, 지금에서야 그저 야시든 여시든 그저 정겹기만 하다.



3.

야시골을 지나면 널밭골이 나오고 다음은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늘밭마을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에덴벨리와 신불산공원묘지가 있는 어곡리로 간다. 늘밭마을은 아무래도 널밭고개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지역에서는 밭이 쭉 늘어져 있는 것을 늘밭이라고 한다고도 한다. 본래 늘밭마을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할 만큼 오지마을이었다고 했다. 원동 쪽에서 오려면 차가 다니기 힘든 경사진 굽은 길을 한참을 와야 했다. 최근에는 어곡리 쪽으로 차도가 나 있어 교통이 수월해졌다. 마을이 긴 고개 끝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앞이 탁 트여 있고, 햇볕이 잘 들어온다. 넓지는 않지만, 농사지을 만큼의 평지도 있어 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다. 지금은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널밭마을을 지나서 경사진 길을 따라 원동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수암사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수암사까지 가는 길은 절반은 차가 갈 수 있고 나머지 절반은 차가 갈 수 없다. 길이 멀지 않고 풍경이 좋으니 차를 두고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수암사 약사전 왼쪽에 길이 70m쯤 되는 폭포가 있다. 불암(佛巖)폭포라고 하는데 토곡산의 비경이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곳이어서 고즈넉하니 좋았다.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수암사라는 이름의 사찰은 전국에 많다. ‘수’ 자는 水, 守, 秀 등으로 다양하지만, ‘암’ 자는 모두 巖(바위 암)이다. 이곳 수암사도 암자 앞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 것으로 보아 바위와 관련해 지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당 안에 있는 설명서에 따르면 옛날에 도선국사가 도를 얻은 명당자리인데, 100년 전에 인근 노인들 꿈에 약사여래와 산신이 나타나서 토곡산 아래 폭포가 있으니 그 옆에 절을 지으라고 여러 번 현신해서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했다. 사찰 유래담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사찰의 위치와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기에 좋은 곳이라 여겨졌다.

다시 사지목삼거리에 이르니 날은 춥고 배는 고팠다. 옛길과 오지마을이 가져다준 정겨움과 편안함이 가을바람에 사라지려고 했다. 아! 인간은 춥고 배고프면 일정한 마음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인가.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 어리버리산악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