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류근 ‘겨울나무’
상태바
[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류근 ‘겨울나무’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4.01.29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이 삶은 혼자 서 있는 시간으로 충만할 것이다
아주 튼튼하게 혼자여서
비로소 이 세상에 혼자인 것들과
혼자가 아닌 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잘 지나간 것들은 거듭 잘 지나가라
나는 이제 헛된 발자국 같은 것과 동행하지 않는다

혼자가 아닌 것은
더 이상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이승이 아니니



“홀로 우뚝선 나무처럼 단단한 혼자가 될 것”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겨울이 되어 무성한 잎이 떨어지면 비로소 나무의 모든 것이 잘 보인다.

이웃 나무와 어깨를 겯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홀로인 나무. 나뭇잎이 걷히니 나무의 눈에도 세상 풍경이 잘 보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삶의 내밀한 다양함은 이럴 때 드러나는 게 아닐까. 잎과 꽃이 아니라 수피와 가지와 나이테로 나타나는, 더 깊이 보아야 보이는 고독한 모습.

사람도 조락의 시간에 들어서야 그 면목이 드러난다. 손을 잡고 함께 했다고 여겼는데 어느새 혼자다.

홀로 태어난 만큼 결국은, 마침내, 혼자이다. 누구든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 운명의 쓴 잔을 대신 들이킬 수 없으니, 내 어깨의 짐은 나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으니. 생각해 보라. 크고 오래된 나무, 우뚝 솟은 산, 숲으로 난 작은 길,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모든 것은 홀로인 것을.

고독에 대해 천착했던 쇼펜하우어도 인간의 행복은 얼마나 홀로 잘 견딜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하였으니 이왕 혼자라면 ‘아주 튼튼하게 혼자’일 것.

약간의 명성이나 인기나 재물 같은 ‘헛된 발자국’에 연연하지 않을 것. 뚜벅뚜벅 혼자 걸을 것. 고요히 햇볕을 쬐는 나무처럼 스스로 충만할 것.

송은숙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울산 앞바다 ‘가자미·아귀’ 다 어디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