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만나는 문인화 산책]눈보라 속 피어난 설중화…동요하지 않는 군자의 자태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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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 만나는 문인화 산책]눈보라 속 피어난 설중화…동요하지 않는 군자의 자태 닮아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4.04.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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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수선화 / 재료: 화선지 수묵담채 / 규격: 140×70㎝ / 화제: 향기로운 웃음도 헤프지 않아 다가서기 어려워도….

세월의 흐름은 꽃이 피고 지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꽃이 피는 시기를 맞춰 비가 내리고, 생기를 잃어가던 꽃망울이 터지고, 꽃들은 일시에 피어나고 있다. 꽃에 생기가 넘치고 대지는 촉촉하다. 어느 하나 아름답고 귀하지 않은 꽃이 있을까? 뜰앞 수선화가 비를 머금고 있다.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초가집 현무암 돌담 아래에는 그가 사랑한 수선화가 군락을 이루며 꽃을 피우고 있다. 수선화는 12월에서 3월 사이에 노란색, 흰색, 다홍색, 담홍색 등의 꽃이 핀다.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설중화(雪中花), 수선(水仙)이라고 부른다.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겨울에 피어 그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는 수선화에 김정희는 자신의 유배의 한(恨)을 녹이고 있었을 것이다.

김정희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공유한 것 가운데 하나가 수선화다. 김정희는 제주 유배 이전 수선화를 마재에 있던 정약용에게 선물했다.

‘늦은 가을에 김우희가 향각에서 수선화 한 포기를 부쳐 왔는데, 그 화분은 고려시대 고기古器였다(秋晩金友喜香閣 寄水仙花一本 其盆高麗古記也).’라고 적고 있다. 정약용이 1828년(순조 28) 10월, 김정희로부터 수선화 분재를 선사 받고 지은 시다.

김정희는 24세에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연경(燕京)에 가서 처음 수선화를 보았다. 43세 때인 1828년 평안 감사로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때마침 연경에서 오는 사신이 그의 아버지한테 선물한 수선화를 받았다고 한다. 김정희는 그것을 분재하여 가을에 정약용 집으로 보낸 듯하다. 정약용은 수선화를 ‘검은 물도 들지 않고 닳지도 않은’ 대은(大隱)의 군자(始知大隱市隱市 猶自緇磷不相入)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김정희는 1840년(55세) 6월 동지부사로 임명되었으나 그 해 7월 윤상도옥이 재론되어 제주도 서귀포 대정에 유배된다. 유배지 대정에서 들판에 피어있는 수선화를 해탈한 신선에 비유하며 매화와 수선화의 대비를 통해 유배지에서의 고독한 심회를 표현하고 있다.

一點冬心朶朶圓 한 점의 동심, 꽃송이마다 원만하니
品於幽澹冷雋邊 그윽하고 담담하고 냉철하고 빼어난 품종이네
梅高猶未伊庭砌 매화는 고상해도 뜨락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淸水眞看解脫仙 맑은 물가에서 해탈한 신선 보네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동심(冬心)’이 꽃망울마다 원만하다고 하였는데, ‘원만하다’ 함은 가득 차 빈 곳이 없음을 말한다. 그윽하고 원만하고, 담담한 수선화가 겨울을 이겨내기에 빼어나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매화는 수선화보다 고상해도 집안 뜨락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반면 수선화는 물가 주변에 어디든 자라나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얽매임이 없는 해탈한 신선이라 한 것이다. 김정희는 수선화를 통해 유배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자유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김정희는 농가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꽃들을 좋아했다. 그의 시 속에는 당시 삶 속에서 접했던 일상의 꽃들에 대한 시가 등장한다. 그는 제주, 과천 시절 마을이나 집 안팎에서 늘 보았던 국화, 복숭아, 맨드라미, 접시꽃, 영산홍, 백일홍 등에 대한 시를 지었다. 그는 왜 일상에 피는 꽃들을 노래했을까? 그가 꽃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생멸(生滅)하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선화는 보는 즐거움을 너머 시인의 마음을 달래주는 정신적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글=김찬호 미술평론가·그림=이재영 문인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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