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발자취를 찾아]차이와 특징에 관한 각별한 관심과 통찰이 원효사상의 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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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발자취를 찾아]차이와 특징에 관한 각별한 관심과 통찰이 원효사상의 근간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4.04.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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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줍기, 유화, 세로 162.2×가로 130.3㎝

원효의 삶과 사상을 관통하는 뚜렷한 특이성이 있다. ‘차이·특징(相)에 관한 각별한 관심과 통찰’이 그것이다. 그의 철학에서 최상위의 개념인 일심(一心, 하나처럼 통하는·통하게 하는 마음)은 ‘차이·특징(相)을 다루는 마음 수준’에 관한 소식이다. 또 그의 특별한 관심사인 화쟁(和諍)은 ‘차이·특징들의 소통과 호혜적 상호 관계를 가능케 하는 사유방식과 조건들에 관한 통찰’이다.


원효의 인간관계나 행적도 이런 특이성과 부합한다. 원효는 세속과 승단 기득권 강자 계층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신분·계층·성별에 부가된 위계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행보를 보여준다. 그가 각별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도 유사한 특성을 보여준다. <금강삼매경>을 편집하고 원효에게 그 해설서인 <금강삼매경론>을 저술하도록 권유한 대안(大安). <송고승전>에 따르면 그는 서민들과 어울리며 왕궁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거리의 성자였다. 날마다 구리로 만든 커다란 밥그릇을 두드리며 ‘크게 평안하소서(大安), 크게 평안하소서(大安)’라고 염불하듯 노래하면서 서민들이 웃고 울고 떠드는 저잣거리를 다녔기에 ‘대안(大安)’ 화상이라 불렸던 인물이다.



문헌 기록과 정황으로 추정컨대, <금강삼매경>은 대안과 원효를 중심으로 일련의 한반도 토착 불교지성 계열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대안과 원효는 출중한 실력으로 핵심 역할을 했다. 원효는 <금강삼매경론>을 저술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으로 볼 때 <금강삼매경> 찬술 작업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삼매경>과 <금강삼매경론>은 고대 한반도 불교지성의 역량과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증언해 준다.

원효가 동북아시아 불교지성의 정점을 구가하게 해 준 한반도 불교지성의 토대는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 학계는 아직 <금강삼매경>과 <금강삼매경론>에 대한 본격적인 철학적 탐구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원효의 도반이었던 사복(蛇福). <삼국유사>에 따르면 그는 과부가 출산하였고 12살까지는 말도 못하고 일어나 앉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사회적 약자였고 신체적 소수자였던 셈이다. 그의 이름도 그가 ‘뱀(蛇)처럼 기어다니는 사람’이었던 정황을 반영한다. 원효는 그런 사복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며 각별한 도반의 관계를 맺고 있다. 사복은 흥륜사에 조성된 신라불교 10대 성인(아도·염촉·안함·자장·혜숙·혜공·원효·사복·의상·표훈) 가운데 한 분이다.



원효가 스승으로 모신 혜공(惠空). <삼국유사>에 따르면 그는 노비 출신의 고승이다. 혜공의 행동은 관행에 매이지 않는 파격으로 일관한다. 작은 절에 살면서 크게 취해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는가 하면, 언제나 삼태기를 걸머지고 다녀 부궤화상(負簣和尙)이라 불렸다. 그는 파격적인 모습과 신이한 능력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선덕여왕을 짝사랑했던 역졸(驛卒) 지귀(志鬼)의 상사병 때문에 영묘사에 화재가 날 것을 미리 알고 3일 전에 예방조치를 취해 준 것도 혜공이었다. 그런 혜공을 스승 삼아 원효는 30대 초중반부터 언제나 그를 뵙고 질문을 했다.



원효 자신, 그리고 그가 각별한 도반의 인연으로 교류했던 인물들은 공통점을 보여준다. 6두품 출신의 원효, 천민이자 신체적 약자인 사복, 노비 출신의 혜공을 관통하는 것은 낮은 사회적 신분이다. 대안 화상의 출신은 알 수 없지만 그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아 귀족 출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차이들을 우열의 체계로 배치하는 위계적 수직 질서에서는 하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신분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탁월한 수준의 불교지성을 갖추고 출중한 내공과 외공을 펼치고 있다.

비주류에 속하는 신분적·신체적 차이, 그러나 진골 귀족과 왕도(王都) 경주를 배경으로 하는 주류를 능가하는 실력, 주류가 선호하는 규범과 관행에 매이지 않는 파격의 행보가 그들의 공통점이다.

사회적 측면에서 규범과 주류 질서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교단을 총괄하는 대국통(大國統)인 자장이 통도사에 부처님 사리를 안치한 계단(戒壇)을 설치하고 모든 승려가 지켜야 할 행위규범(戒)을 그곳에서 받게 하여 승려의 규범을 관장하는 체계를 확립하였던 것도 주류 질서의 유지라는 의미가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그들의 파격은 단순한 윤리적 품행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효사상의 특이성인 ‘차이·특징(相)에 관한 각별한 관심과 통찰’은, 그의 사회적 조건이나 교류 인맥의 특징과 부합한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그의 사상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불교의 전통 속에서, 원효의 사상과 행보에서 목격되는 이러한 특이성은 뚜렷하게 돋보인다. 붓다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기존의 불교 교학에서는 간과하고 있지만, 붓다의 통찰도 삶과 죽음을 비롯한 ‘현상의 차이·특징(相)에 대한 인간의 시선과 그 대응 방식’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원효는 불교 교학의 해석학적 관행을 답습하지 않으면서 붓다 통찰의 핵심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 원효에 대한 기존의 시선과 탐구에서는 그가 지닌 이러한 특이성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 원효와의 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글=박태원 울산대 철학과 명예교수·그림=권영태 화백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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