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51)]진정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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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51)]진정한 여행
  • 경상일보
  • 승인 2024.04.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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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래서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일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능력과 건강이 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먼 대륙으로의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이웃 나라에서의 짧은 여행도 일상에서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

모든 사람은 지금 살고 있는 익숙한 환경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항상 새로운 풍경과 낯선 문화 속에서 느끼는 설렘과 긴장의 시간을 갈망한다. 여행을 소재로 하는 수많은 방송프로그램을 보면 여행에 대한 우리의 허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혼자서 하는 방송도 대부분 낯선 여행지에서 체험하는 사건들로 채워진다. 위험하고 낯선 이국땅으로 카메라 하나만 들고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젊음과 용기를 부러워한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잠재해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은 오래된 진리이다. 이러한 일상을 새롭게 영위할 힘을 주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지는 짧은 일탈이다. 그러나 일상을 벗어난 짧은 시간이 우리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여행에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작가 알랭드 보통은 현대인의 여행 욕구와 의미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몇 시간 기차를 타고 여행에 몸을 맡기다 보면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삶에서 필요한 깊은 감정이나 생각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가정이라는 환경은 우리를, 일상 속의 나라는 인간, 본질적으로 내가 아닐 수 있는 인간에게 계속 묶어 두려고 한다”

여행의 형식도 나이와 함께 변화해 간다. 젊은 시절에는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모험적인 여행을 즐겨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양적인 여행이 버거워진다. 대신 천천히 돌아보는 정적인 여행을 선호하게 된다. 요즈음 자주 회자 되는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도 이런 유형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의 설렘과 일상의 편안함을 함께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여행 방식이다.

여행이 누구에게나 그리고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러는 평생 실행하지 못하는 여행을 가슴에 담고 지내기도 한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진부한 일상 대신에 가슴 벅찬 시간을 만들어 보리라 꿈을 꾼다.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는 나이가 되어서도 낯선 곳으로 향한 열망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대양을 돌아다니는 크루즈 여행을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먼 곳에 대한 환상이 우리를 들뜨게도 하지만 때로는 상실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살다 보면 진정한 여행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진정한 여행은 대륙을 찾아 떠나는 것보다는 세상에 대한 시각과 자세를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외부 환경의 변화보다는 마음속의 질서와 자세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여행자다.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시간의 길 위에 선 여행자이다. 누구도 이 여행의 목적지와 경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멈출 수 없는 삶의 여행이다. 자기 스스로 길을 만들어서 나아가는 삶의 여행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일상을 설렘이 있는 여행으로 만들어 가는 절실함이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가 빛나는 여행지라는 깨달음도 함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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