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우리가 만드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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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우리가 만드는 봄
  • 경상일보
  • 승인 2024.04.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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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상아 연암초등학교 교사

봄물결이 일렁이며 대지의 생물이 기지개를 켜는 계절. 매년 이맘때쯤 꽃구경을 하며 진달래색, 개나리색, 풀잎색을 배경 삼아 나들이 온 사람들을 관찰하곤 한다.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 한 손에는 엄마 손을 잡은 아이, 팔짱을 꼭 낀 연인, 최선을 다해 서로의 인생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들. 이렇듯 찬란한 자연의 봄은 마음을 들뜨게 하고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로 역사적 사건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상화 시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봄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이고, 천만 관객 수를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봄은 민주화의 희망이다. 초등학교 5, 6학년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사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운다. 마침 올해 담임을 맡은 6학년 학생들과 민주주의 단원을 공부하던 중,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 사무원으로 선발되었다.

선거일은 새벽부터 분주했다. 새벽 5시에 도착해 배정받은 업무를 숙지하고 주의사항을 전달받았다. 해가 길어졌다지만 아직은 어스름한 시각 5시30분, 신분증을 손에 쥔 채 주민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오전 6시부터 열린 투표소에는 약 900명의 유권자가 다녀갔으며, 투표용지를 배부하며 관찰한 모습을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농담형이다. 이 유형은 일단 밝은 목소리로 “50㎝ 넘은 용지 구경하러 왔습니다~, 남편 것도 제가 하면 안 될까요?”와 같은 농담을 해 소소한 웃음을 주는 비타민같은 존재였다. 두 번째는 질문형이다. “각각 한 표씩 투표하나요?”라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누굴 뽑을까요?”라는 차마 대답 못 할 질문을 하기도 했다. 세 번째는 실수형이다. 투표용지에 실수한 경우, 용지 인쇄를 유권자 수와 맞춰서 하므로 용지를 바꿀 수 없다. 급한 마음에 실수한 용지를 찢으려는 일도 있었는데, 공직선거법에 의해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어 주의를 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노력형이다. 허리가 아파서 걸음을 옮기며 거친 숨을 내쉬던 분, 시력이 안 좋아 벽을 손으로 짚으며 오신 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투표 방법을 반복해 묻던 분처럼 투표를 끝까지 마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한 표에 깃든 소중함과 가치를 다시금 느꼈다.

교육과정 안에서 중립을 지키는 교사로서, 사회 시간에 정치에 관한 질문을 받아도 교과서 외 내용에는 말을 아낀다. 그러나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꼭 강조하는 것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 그 참여의 시작이 투표라는 사실이다. 아직도 전교·학급 임원 선거때마다 “뽑을 친구가 없는데, 그냥 안 뽑아도 돼요?”라는 질문을 듣곤 한다. 학생들이 앞으로 경험과 배움을 통해 마음의 텃밭에 ‘견해’라는 씨앗을 심고 ‘지혜’의 양분을 뿌려 곧은 싹을 틔우기를 바란다. 마침내 다채로운 꽃을 피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봄으로 이루기를.

배상아 연암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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