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내의 초록지문(4)]식목일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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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내의 초록지문(4)]식목일 즈음에
  • 경상일보
  • 승인 2024.04.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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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알프스의 고산지대를 여행하던 ‘나’는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황무지에 도착한다. 자라는 것이라고는 야생 라벤더밖에 없는 데다 차갑고 세찬 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양치기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희망이 없는 듯 보이는 땅에 매일 100개의 도토리를 심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묵묵히 나무를 심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목일 즈음이면 나무 심기에 관한 소식이 많이 들린다. 지자체의 단체장이나 대기업 중심의 큰 행사부터 지인들이 참여한 소박한 식목 행사까지 규모도 수종도 다양하다. 몇 해 전 본인의 이름표를 붙인 나무를 심은 후 매년 보살핀다는 지인의 소식도 있다. 이 무렵이면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떠올린다. 작가의 경험에 바탕을 둔 소설은 실존인물인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의 생을 통해 나무를 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단순히 땅에 묘목을 심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이다. 양치기 노인이 심은 도토리가 자라 숲이 되면서 황무지는 살아났다. 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바람은 씨앗을 옮겨왔고, 사람이 모여들었다. 밭에는 채소가, 산기슭에는 보리와 호밀이 자랐다. 세찬 바람만 불던 폐허는 사람들의 밝은 웃음이 넘치는 곳으로 변모했다.

소설처럼 숲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다거나 제대로 돌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 탓에 나무 심는 것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집 근처의 자투리땅에 텃밭을 가꾸거나 반려 식물을 집안으로 들이는 것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사람이 전 생애에 걸쳐 사용하는 목재의 양은 46.8㎥이며, 이를 얻기 위해서는 425그루의 나무가 필요하다고 한다. 최소한 내가 사용한 만큼은 미래를 위해 심어야 하지 않을까.

창을 열자 초록 바람이 불어온다. 물오른 연두 사이로 얼굴을 내민 황매화며 조팝나무, 영산홍의 웃음이 와글와글하다. ‘행동이 조금도 이기적이지 않고 더없이 고결한 마음에서 나왔으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나무를 심은 사람>) 양치기 노인은 이토록 눈부신 초록 물결을 예측한 것일까. 내가 즐기는 숲은 누군가의 희망이 쌓인 곳이다. 나는 이제까지 몇 그루의 희망을 심었을까. 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몇 그루라도 더 심어야겠다.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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