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④]노일문고(魯日文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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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④]노일문고(魯日文庫)
  • 김창식
  • 승인 2024.04.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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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진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교수

울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신관 6층에는 일본 원서로 가득 채워진 책장이 줄지어 있다. 바로 ‘노일문고’이다. 노일문고(魯日文庫)는 일본어·일본학과 명예교수 노성환(魯成煥)과 울산대학교 도서관의 일본 관련 도서 확보를 위해 도움을 준 많은 일본인(日本人)의 기증으로 완성되어 그리 명명되었다. 일본 각 지역의 향토 문화와 문화재 관련 도서를 비롯해 어문학, 민속학, 지역학, 고고학, 역사학 분야를 망라하는 다양한 도서 약 1만6000권이 소장되어 있다.

노일문고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민속학 컬렉션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조선과 일본 지역의 향토 문화와 문화재 관련 희귀 자료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이는 민속학 연구자이자 민속 사진작가로 저명한 하기와라 히데사부회(萩原秀三郞)와 동아시아 고대문화 연구자인 오쿠노 마사오( 奧野正男)가 평생 수집한 소장 도서를 울산대 도서관에 기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 일본인 학자와 노성환 교수와의 인연은 노 교수가 한국에서 일본 민속학 연구자로서 오랫동안 활동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이어졌으며, 역사적으로 일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울산에 민속자료 컬렉션을 마련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던 것이다. 특히 규슈(九州) 지역 관련 자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특징이며,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민속학으로 특화된 컬렉션이기에 문화적·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  권3
▲ 권3

노일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도서 중 특히 도쿄교육대학 명예교수인 와카모리 다로(和歌森太郞, 1915-1977)의 도서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민속학자로서 활동하며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 중 일본의 연중행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상세한 설명을 수록한 <연중행사(年中行事)>(至文堂, 1972)는 일본 민속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반드시 참고해야 할 도서 중 하나이다. 이를 비롯해 그의 <역사 연구와 민속학(歷史硏究と民俗学)>(弘文堂, 1969), <민속세시기(民俗歲時記)>(岩崎美術社, 1970), <일본제례지도(日本祭禮地図)>(1976) 등 40권에 가까운 저서가 소장되어 있다.

와카모리 다로의 <일본제례지도>(4권)는 일본 국토지리협회에서 1976년에 간행한 자료이며 울산대학교 중앙도서관 귀중본으로 지정돼 있다. 이 자료는 봄·여름·가을·겨울 총 4권으로 구성돼 있고, 각 권에는 계절별로 일본 전역에서 실시되는 전통 의식, 행렬, 음악, 풍류, 예능, 점술, 민속 행사, 공양, 시장, 지역 축제를 표기한 지도 10점이 수록되어 있다. 다양한 제례 및 전통 행사가 어디에서 행해지는지 위치가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어 일본의 전통 민속학 연구를 진행할 때에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일본제례지도>는 1976년에 간행된 이후 2009년에 복각본이 출판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되어 구매하지 못하는 문헌자료이다. 일본 내에서도 국립국회도서관을 제외하고는 아오모리(靑森)현립도서관, 야마나시(山梨)현립도서관, 오사카(大阪)부립중앙도서관, 히로시마(廣島)현립도서관 등 소수의 도서관에서만 소장하고 있어 쉽게 구하기 어려운 자료이다. <일본제례지도>의 지도 부분은 제례와 관련된 의식이나 행사 등이 치러지는 장소를 세세하게 표기했다. 어느 지역에 어떤 제례가 존재하는지 지도에 표기함으로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제례가 많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살펴볼 수 있고, 특정한 제례의 분포 양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

▲  하계편(夏季編)
▲ 하계편(夏季編)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자료는 1920~30년대에 간행된 <국어독본(國語讀本)>권7~9(1925), <중등교육 수신서(修身書)> 권3(1937), <한문교과서(漢文敎科書)>제5학년용(1937) 등과 같은 일본 교과서다. 이 중,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중등교육 수신서>의 제12~13과는 조선의 정치와 관련된 부분으로, 조선 총독인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의 농가 방문, 정비된 지방 도로, 조선 경성의 과거와 현재 모습 등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는 사진이라는 시각 자료를 통하여 조선총독부에 의한 일제강점기 교육의 통치 도구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처럼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를 뒤지다 보면 뜻하지 않게 좋은 자료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정한 분야의 컬렉션이라고 한다면 희귀하면서도 유의미한 자료가 눈에 들어올 가능성도 더 커진다.

필자의 주변에는 대학교 교수로 한 평생 재직을 하고 현직의 마침표를 찍은, 혹은 마무리를 준비 중인 연구자가 많이 있다. 퇴직을 앞둔 연구자의 최대 고민은 30~40년 동안 모은 자료를 보관할 곳을 찾는 것이다. 예전에는 대학 도서관에 기증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이조차 용이치 않은 실정이다. 도서 자료의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추진되고 있고, 책을 두었던 서가는 학생들의 라운지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오랜 기간 동안 수집한 양질의 도서는 특화된 주제의 도서 컬렉션이며, 여기에는 더 이상 입수하기 어려운 귀중한 자료들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천덕꾸러기로 여겨지는 특정 분야의 도서가 어쩌면 보물창고이지 않을까? 이와 같은 전문 도서를 처지 곤란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특화된 컬렉션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로 재고하는 것이 도서관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김미진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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