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너와 나의 다름, 그리고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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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너와 나의 다름, 그리고 이해
  • 경상일보
  • 승인 2024.04.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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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어둠속의 대화’라는 체험 전시가 있다. 꽤 오래전 이 전시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관객들은 불빛이 아예 없는 깜깜한 공간에서 가이드들의 안내를 받아 체험관 이곳저곳을 다니게 된다. 어느 공간에는 도로를 본 따 차들이 오가는 소리가 나고, 다른 공간에는 시장터를 본 따 물건들을 파는 소리가 들린다. 관객들은 소리를 귀로 듣고 감지해 조심조심 움직이거나 공간에 있는 물건들을 만져보며 여기가 어디고 이게 무엇인지를 알아나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위험할 듯 하지만 가이드들의 안내가 뛰어나기에 막상 경험해보면 생각보다 안전하다. 모든 과정을 다 통과해오면 이 체험의 하이라이트가 있는데, 혹 경험해볼 분들이 계시다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여기까지만 읽으시면 된다.

하이라이트는, 사실 그 가이드분들 모두가 시각장애인이란 것이다. 가이드들은 마지막에 전시관을 벗어나기 직전 작별 인사를 하며 그 사실들을 밝힌다. 이미 눈치를 챈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시각장애인들이 우리 입장에선 굉장히 취약해 보이기 때문일까. 빛이 없어도 너무나 편하게 다니는 가이드분들과 함께 있다보면 이분들이 특수한 안경 같은걸 썼거나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할지언정 시각장애인이라는 생각까진 못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마지막 순간의 그 작별인사와 고백은 전시 내내 했던 경험 전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농담도 주고 받고 의지하며 짧은 시간이나마 친밀해졌지만, 결국 관객들은 가이드들의 얼굴도 알지 못한채 헤어지게 되고 앞으로 그들의 얼굴을 기억할 수도 없다.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기분이 묘해지는 체험인데 생각해보면 시각장애인분들에겐 이게 일상이다. 그분들이 촉지로 얼굴을 만져 기억하는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일상생활 중 만나는 대부분의 이들은 관객들이 가이드들에 대해 체험한 것처럼 목소리 정도로만 기억될 것이다. 이 조용하지만 강렬한 체험 전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통찰을 담고 있다. 결국, 우린 다른 사람이 생활하거나 활동하고 있는 환경과 상황을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장애는 아니지만 상대방 입장이 되어본다는 점에서 비슷한 체험전시로 노인생애체험 센터가 있다. 알기론 전국에서 딱 한군데인 서울 용산구에서만 운영을 하고있고 신청 후 정족수가 채워져야 체험이 가능한 등 과정이 까다로워 사실 필자도 아직 못 가봤다. 그래서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젊은이들에게 노인이 되면 겪게 되는 신체적 특징들을 도구들을 이용해 조성해 간접체험을 하게 하는 방식으로 들었다. 경험해본 사람들 말로는 “아 우리 윗세대가 이런 불편을 감수하며 사시는지 몰랐다”는 등 많은 것을 느낀다고 한다.

이뿐일까. 필자는 일부러 휠체어를 탄채 필자가 일하고 있는 울산병원 여기저기를 다녀볼 때가 있다. 업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걸어다닐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다른 환경을 경험해 보는 것은 전부 나와 다른 시람들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준다. 비단 신체적 다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거나 특정한 경험을 하게 될 때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살면서 겪은 경험들의 다름이 결국 입장의 다름으로까지 이어지는게 아닐까.

지금은 갈등이 많은 사회다. 그 기저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 부재가 아마도 깔려있을 것이다. 그런만큼 각각의 상황들, 그 특수한 상황에서 겪은 경험과 그에 따른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건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하지 않을까. 특히 극단적인 발언들이 많은 요즘,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더더욱 필요할 듯 하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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