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가깝다고 생각하는 곳에 먼 곳이 있고 얕다고 생각하는 곳에 깊은 곳이 있다. 우리네 삶의 이치가 그렇다. 특별한 것은 특별한 데 있지 않고 소중한 것은 일상 속에 있다. 지혜 있는 사람도 보기 어려운 것이 자신의 눈썹이며, 현명한 사람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맹자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자기 자신을 살피는 것이라고 했고, 한비자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산도 그렇다. 이름난 산, 멀리 찾아가서 만나는 산이 대체로 좋은 것은 맞지만, 이름 없는 산 중에도 가서 보면 마음 두고 싶고 머물고 싶은 산들이 있다.
부산 기장군 웃골이 그렇다. 백운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전국에 무수히 많다. 아마 산 이름 중에 가장 많을 것도 같다. 하긴 중국에서 가장 많은 산 이름 중의 하나가 바이윈산(白雲山, 백운산)이다. 다른 산 이름들은 우리말은 같아도 한자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백운산은 한자 표기가 거의 白雲山이다. 산 이름만큼 유래도 거의 비슷하다. 울산에도 백운산이 있고 밀양에도 백운산이 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산은 부산시 기장의 백운산(523m)이다. 부산시 기장의 백운산은 낙동정맥 천성산에서 분기해 해운대 동백섬까지 이어지는 39.7㎞ 용천지맥의 대표적인 산 중의 하나이다.

흔히 우리나라 산맥을 정리할 때 1대간 9정맥 162지맥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줄기는 백두산에서 비롯된다. 이 땅의 근골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의 백두대간으로서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 지었다.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이라 한다. 그로부터 갈라져 각각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한다. 산맥 개념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표현한 지도가 19세기에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다. 대동여지도는 선의 굵기 차이로 산맥의 규모를 표시했다. 제일 굵은 것은 대간, 2번째는 정맥, 3번째는 지맥, 기타는 골짜기를 이루는 작은 산줄기로 나타냈다. 정맥의 시작은 특정한 산이고, 그 끝은 강 하구의 해안선까지 연결돼 있다.
백운산은 대체로 단독 산행보다 철마산-망월산을 끼고 함께 산행한다. 나는 단지 산행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백운산만 오르기로 했다. 사람들은 산행이 목적이기에 흔히 그냥 지나치지만, 백운산 아래에는 기장군의 대표적인 오지 마을이 있다. 흔히 상곡 마을이라고 하는데, 우리말 표현은 웃골 또는 윗골이다. 임기 계곡의 가장 위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등지에서 부상당한 군사들과 피난민들이 이곳에 피난해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흥선대원군때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마을에 숨어 살았다고 하며, 최근까지 공소가 있었다고 한다.

2출발지는 임기리 공영주차장이다. 임기 마을의 옛 이름은 ‘숲터’이다. 임기천 협곡이 이곳에 이르러 넓은 평지를 이루면서 숲이 우거진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입석마을과 송정마을이 번창하면서 이 숲을 농경지로 개간했다고 전한다. 개간한 농경지를 ‘숲터’라고 불렀는데, 한자로 ‘수풀 임(林)’, ‘터 기(基)’ 자를 써서 임기(林基)라고 했다. 차성가(車城歌)에 “임기촌(林基村)에 꽃 푸엿고 백운산(白雲山)에 달 떠 온다.”라고 하여 임기촌이란 지명이 나온다. 버스정류소 옆에 2000년 11월25일 건립한 ‘6·25 참전용사 기념비’가 서 있어 특이하다. 임기마을은 주변이 강으로 둘러싸여 태풍 피해를 많이 보았다고 한다. 임기마을은 4대 효자와 1명의 효부가 유명하다. 김순적→김련(입향조 참봉공 청유의 11세 손)→효부 강 씨(김련의 부인)→김봉의(김련의 아들)→김상제(김련의 손자)로 이어지는 효자 김씨 가문이 그것이다.
백운산과 웃골을 가려면 임기리 공영주차장에서 임기천을 따라 오르면 된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데, 짙은 초록의 당근밭들이 눈에 띄었다. 전원주택처럼 집안 정원이 예쁜 집들이 나오고, 조금 걷다 보면 공작새 울음소리도 들린다. 시골에서 공작새를 키우는 집은 드문데, 지난 마을조사때 온양읍의 한 마을에서 보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본격적으로 계곡을 따라 걷는다. 길이 나 있어서 그렇지 계곡은 깊고 숲은 우거져서 밖에서 보면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다.
땀이 날 즈음에 지장암 이정표를 만났다.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조금 가면 암자가 있다. 무량수전을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제법 많이 올라야 한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곳이다. 지장보살은 관세음보살과 더불어 아미타불의 협시불이기도 하지만, 아미타불이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이니 지장보살과는 필연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암자 이름이 지장암인 이유일 것이다. 무량수전을 오르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두 마리 개다. 덩치 큰 개와 작은 개, 작은 개는 나이가 많은 데다가 중병이 걸려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워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지장암 삼성각에는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칠성도가 있다. 칠성도(七星圖)는 칠성을 불교의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수용하고 이를 의인화해 묘사한 그림이다. 화면 아랫부분의 기록에 의하면, 조성 시기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에 월주 덕문 스님에 의해 조성됐다.
지장암을 나와서 다시 계곡 따라 한참을 오르면 임기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 둑에는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정겨웠다. 저수지를 지나 조금만 가면 웃골마을 입구가 나온다. 왼쪽에 관음암이 있고 주변에 집 세 채가 있다. 집 뒤쪽으로 조금 오르면 예전에 집과 밭이었던 터들이 나온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너진 폐가도 한 채 외롭게 있다. 폐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좋다. 멀리 산 능선이 보이고 그 아래로 골짜기가 굽이치며 산 사이로 사라진다. 이곳에 집 짓고 살면 풍경 보는 즐거움으로 외로움을 견딜만하다 싶었다. 돌복숭아나무, 호두나무, 느릅나무, 감나무 등이 산골 오지 마을 느낌을 더해주었다.
누군가의 개인 농장을 지나 길 따라 계속 오르막을 오르면 철마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알리는 작은 팻말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간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흙길을 조금만 걸으면 곧 너른 공터가 나오는데, 옛날에 피난 온 사람들이 숨어 살던 곳이다. 전형적으로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는 곳이다. 엄나무와 가죽나무 등이 많았고 살짝이 보이는 돌담들이 한때 집터였음을 알려주었다. 멀리 금정산 줄기에 있는 원효봉이 보였다. 이곳에서 1㎞ 채 가지 않으면 백운산 정상이다. <기장읍지>에는 백운산을 일러 산 위에 항시 흰 구름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백운산에 오르면 인근의 모든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3임기마을은 부산시 노포동과 양산 덕계, 기장 정관신도시에서 멀지 않다. 바로 앞에 국도 7호선 큰길과 고속철도가 지나간다. 이런 마을에 차를 타면 20여분, 걸으면 1시간 조금 넘는 곳에 기장 최고의 오지 마을이 있을 줄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요즘 나는 가까운 곳에서 숨겨진 좋은 곳을 찾는 즐거움을 누린다. 높은 산이 아니어도 산속으로 들어가면 온통 숲이고 계곡이다. 내가 처음 가본 곳들도 많다. 굳이 멀리 찾아갈 일만은 아니다. 소중한 것은, 아름다운 것은 그저 내 곁에 일상처럼 있게 마련인데 사람들이 자꾸 멀리만 바라봐서 그 존재를 알지 못할 뿐이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어리버리산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