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이 곳이 무릉도원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듯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겻셰라
아희야 무릉이 어듸뇨 나는 옌가 하노라 <해동가요>

설을 쇠고 보니 한결 햇볕이 따습다. 새해 새바람 새로운 햇볕, 물소리 여울진 길을 찾아 나선다. 얼음 뚫고 내린 물소리에 귀를 씻고 마음을 닦을 요량이다. 조식 선생의 산천재가 자리한 곳은 지리산 덕천강이 흐른다. 덕천강은 대원사에서 흐르는 물과 중산리 계곡에서 흐르는 두 갈래 물이 합류하는 양단수 이다. 오늘 찾아 나서는 물소리가 두류산 양단수라면 그 얼마나 신성하랴.
설을 쇤다는 말은 언행과 몸가짐을 조신(操身)해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말이다. 섣달그믐은 작은 설이라 묵은세배를 드린다. 섣달그믐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해를 돌아보는 묵은세배에도 의미를 두는 것이다. 섣달그믐 밤에는 방마다 곳간마다 뒷간까지도 어느 곳이든 등을 밝혀 그믐밤을 샌다. 어떤 액도 범접하지 못하게 환히 밝히는 것이다. 한 해 첫 음식은 묵은 때를 씻어 버리는 순백의 떡국을 먹는다.
어린 날엔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 앉아 세배드리는 숙모님들의 치마 밑 흰 버선발을 보는 설이 즐거웠다. 분가한 며느리들은 솜씨 껏 떡국을 끓여 받쳐 들고 와서 세배를 드린다. 할머니는 떡국으로 이집 저집 장맛을 앉아서 다 보신다.
정월 초사흘까지는 여자애들은 남의 집 방문을 삼간다. 요즘 같으면 정초부터 남의 댁에 먼저 설 인사 전화나 카톡을 날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날 세시풍속을 즐기는 맛도 멋이다.
새해 첫날 남명 선생의 두류산 양단수가 그림같이 흐르고 천왕봉이 바라뵈는 산청군 시천면 덕천동 산천재를 찾아 나선다. 복숭아 꽃잎 뜬 맑은 물에 비치는 산 그림자를 보고 무릉도원이라 시를 짓고, 학문을 실천으로 곽재우 장군 등 많은 의병장을 양성해 임진왜란에 크게 공을 세우신 우뢰 같고 칼날 같은 기상을 찾아 나선 것이다.
산천재 그 아무도 누구도 아니 계시지만, 무언의 말씀을 듣는 지금 여기 오늘이 무릉도원이라 필자는 전한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