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삿포로에서 두번째 개인전…디지털아트 제작
지난 21일 울산 남구 달동의 한 건물 2층에 위치한 개인 작업실에서 만난 정영진 작가는 일본 삿포로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의 두 번째 삿포로 초대 개인전(2월18~23일) 현지 방문을 앞두고 들뜬 모습이었다. 정 작가는 지난해 2월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삿포로 시립전시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가졌다. 한국 작가가 삿포로 시립전시관에서 단체전이 아닌 개인전을 갖는 것은 정 작가가 처음이다.
정 작가는 “보통 해외에서 전시회를 하게 되면 작품을 가져가고 끝난뒤 다시 가져오는 게 큰 일인데, 이번에는 디지털아트 기법으로 작업 한 것이어서 작품을 출력해 가져가 훨씬 수월했다”며 “용지도 보통은 두꺼운 캔버스천에 하는데 이번에는 철수할 때 편하도록 일반 용지에 했다”고 말했다.
‘공존의 초상(Portraits of Coexistence)’이라는 이름으로 삿포로 시립전시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 정 작가는 도시와 자연, 과거와 미래, 인간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 12점을 선보이고 있다.
정 작가는 이번 전시회 제목을 ‘공존의 초상’이라고 지은 것과 관련 “처음으로 디지털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과 자연, 도시가 이루는 조화를 탐구하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작업에서도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다루긴 했지만, 회화적 방식에서는 표현의 한계가 있었다”며 “‘공존의 초상’은 단순히 이 세 요소가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를 넘어, 그들이 필연적으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삿포로 시립전시관은 1926년에 건축된 역사적 건물로, 과거 삿포로 고등법원으로 사용되던 장소다”라며 “삿포로 시립전시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장소이자,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정의를 상징하던 법원이 예술을 통해 새로운 시대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소로 변모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는 더욱 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업과 예술이 함께 성장하는데 기여하고파
정 작가는 울산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울산에서 다닌 울산 토박이다. 이후 서울 건국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디자인 관련 일과 해외 e커머스(전자상거래) 사업을 하며 서울에서 쭉 지냈다. 결혼과 가정도 서울에서 하고 꾸렸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하던 사업에 제동이 걸리게 되고 고심 끝에 부친의 권유로 부친이 울산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업체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시 고향 울산으로 내려오게 됐다. 그런 그에게는 이제 기업체 대표와 함께 미술작가 두 개의 명함이 있다.
정 작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지만, 본격적으로 미술 작업을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면서부터다”라며 “당시 파인아트를 좋아하는 선배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따라 서울의 갤러리와 전시회를 다니면서 다양한 예술 사조와 표현 방식을 접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싶은 열망이 점점 커졌다. 예술은 점점 나의 삶 속 깊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그림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내면의 감정과 경험을 담아내는 수단이 되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지금까지 개인전 7회, 단체전 20여회 참여에 약 200여 점의 작품을 그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커피의 또다른 향기’ 시리즈를 꼽고 있다. 그는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이 작업은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일상적인 재료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었던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작품의 특징과 관련 “초기에는 현실적인 형태를 기반으로 한 구상화를 그렸지만, 점차 현실을 초월한 형태를 탐구하며 비구상적 표현으로 확장되었다”며 “겉으로는 강렬한 색채와 형태의 왜곡, 그리고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구성을 통해 화려함을 표현하는것처럼 보이지만, 감상자가 작품을 경험하면서 몰입할 수 있는 감성적인 장(場)을 제공하고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울산은 여전히 문화·예술적 활동과 기업이 협력하는 사례가 부족한 편이다. 기업의 자본과 인프라, 그리고 예술의 창의성이 결합할 수 있다면 새로운 방식의 예술적 가치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한 개인 작업을 넘어서, 기업과 예술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메세나 프로젝트와 지역 대학과의 산학 협력을 통해 울산의 문화·산업적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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